탈북자들의 수기

    등록일 : 2011-02-24 오후 10:36:40  조회수 : 3686
  26 . [퍼옴글] 한 보안원의 고백 - 김문성
  등록자 : Paull Kim        파일 :


김문성, 그는 북한 보안성 정치대학 졸업생이다. 뿌리가 좋은 가정적 배경이 있어 보안원 별을 다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그 이후가 문제였다. 그는 깊숙한 늪에 빠져 자기 앞길을 망쳐 버렸다. 하지만 그는 그 당시 보안원 대열에서 쫓겨나도 후회는 없었다고 한다, 그가 들려준 긴 이야기를 여기에 다 올릴 수는 없지만 북한에서도 한다하는 보안원이던 그가 왜 연상의 여인에게 빠져 불륜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주요 부분만 정리해서 싣고자 한다.


1, 욕구는 법을 무시한다.

그 남자는 한 여자에게 반했다. 보안서에 입대하기 전 그는 원양 어로선단운반선(1만 톤급)인 백두산호의 무전수 백은희를 사랑했다. 은희는 성과 이름처럼 아름다운 여자였다. 후에 백두산 호는 함경남도 양화수산사업소로 전의됐지만 이미 그때는 두 사람사이가 발전해 결혼을 눈앞에 둔 때였다. 결혼잔치를 앞에 놓고 문성은 보안서 입대통지를 받았다. 그러지 않아도 거친 선상생활을 탐탁히 여기지 않았던 문성은 환성을 지르며 은희를 얼싸안았다. 정말 일거양득으로 문성은 직업과 아내를 모두 얻고 새 사람으로 태어났다. 그때를 회상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처럼 환희로 가슴이 뛰던 때는 없었습니다. 세상이 모두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으니까요! 우리 결혼생활은 정말 달콤했습니다. 하지만 5년 후 우리 가정은 뜻밖의 일로 갈등을 겪게 됐습니다. 그것은 아마 내가 보안서 추천을 받아 평양에 있는 보안성 정치대학에 가게 된 때부터인 것 같아요.”


그때 이미 그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기 싫어 늘 밖에서 맴도는 남자가 되었다. 왜 그랬냐는 질문에 그는 쓴 웃음을 지으며 솔직한 고백을 털어놨다.

“다 못된 내 심중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지요, 하지만 그때는 정말 싫은 내 마음을 좀처럼 추스르지 못하겠더라고요,”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아내가 첫 아이를 낳고 탈모증에 걸려 머리가 모두 빠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내는 아름다운 여자였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머리칼이 완전히 빠져 버렸어요. 그때는 노골적으로 문어대가리라고 마구 흉봤지요. 빤빤한 머릴 물끄러미 들여다보면 아무리 참으려 해도 구역질이 올라오는 걸 어찌합니까? 내가 못나서 그랬지만 아무튼 정말 싫었습니다. 모욕에 가까운 내 구박을 말없이 참고 견디던 아내 모습이 지금은 아린 추억으로 남지만 그때는 왜 그리도 미워했던지, 참 후회가 많습니다.”

“뉘우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외람되지만 그렇게 미워하게 된 다른 이유가 있지는 않았습니까?”

“다른 이유요?”

“사람감정이 그렇게 없어진 머리 칼 하나만 가지고 순간에 변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네, 그런 게 있었습니다. 참 말씀드리기가 쑥스럽군요.”

“독자들을 위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어떤 얘기든 진실에 바탕을 두어야 실감나는 것 아닙니까?”

“말하지요, 사실은 그때 내게 아내 아닌 다른 여자가 있었지요.”

“여자요? 어떤 여자입니까? 아내보다 더 예뻣습니까?”

“아닙니다. 인물만 보면 더 형편없는 여자였습니다.”

“예?”

“들어 보십시오, 아시겠지만 보안서에 다닌다고 해서 별로 생활이 즐거운 건 아니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면 법을 다루는 공무여서 마음대로 장사도 못하고 오히려 살림이 더 쪼들리는 것이 보안원 생활이었습니다. 두 아이는 배고프다 보채고 머리 칼 없는 아내는 집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참 막막했지요. 그러던 때 내게 불법으로 금속장사를 해서 큰돈을 번 여자가 걸려들었습니다. 나는 그 여자를 취조하던 중 나도 모르게 그 녀에게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등이 살짝 휜 곱사등이었단다. 그럼에도 강렬한 눈빛은 보통여자와는 어딘가 다른 느낌을 주었다. 죄는 귀금속인 금강석과 금을 되넘겨 판 것인데, 그 양이 자그마치 수십 키로에 달했다. 혐의대로라면 그녀는 10년 이상의 중형을 받아야했다. 그 여자의 눈빛엔 많은 사연을 담고 있었다. 그 순간 번개 치는 한 가지 생각에 문성은 다시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윽히 초점을 맞춘 두 눈빛은 많은 것을 약속하고 있었다.


담당보안원이 물증을 없애고 상급자에게 ‘그것’만 찔러준다면 못할 것도 없다. 비록 장애가 있는 보잘 것 없는 여자지만 그녀의 배포는 컸다. 아직 숨겨둔 무엇이 있고 보유한 외화액수도 주저 없이 얘기해 줄 때 문성의 입은 저도 모르게 벌어졌다. 그것은 그가 꿈에도 상상해보지 못한 큰 액수다.


“그래서 결국 합작을 하게 된 거군요”

“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자기는 이제 감옥에 가면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고요, 그러니까 한 인간을 살려주는 셈 치고 도와 달라는 거였습니다. 사실 장애자가 감옥에 가면 저 윗동네에선 사형을 선고 받은 거나 다름이 없으니까요, 뭐 그래서라기보다 난 그 순간 내 가족을 생각하며 머리를 끄떡였지요.”

“무죄로 풀어 주었는가요?”

“네! 다행이 위에서도 내가 올린 조사서에 별 이의를 달지 않고 그대로 통과시켜 주더군요, 물론 상당한 돈을 찔러주어야 했지만요.”


두 사람은 그때부터 바짝 가까워졌다. 김문성은 그 사건처리 후 바로 정치대학으로 가게 되었다. 가면서 한 때 피의자였던 그녀에게 가족을 돌봐 달라고까지 부탁했다. 그 장사꾼 여자의 ‘충실성’은 각별했다. 그녀 후원으로 3년간 교육을 마치고 귀가했을 때는 이미 김문성은 많이 변해있었다. 그는 평양에서 남부럽지 않게 고위급이나 무역일꾼만 드나드는 외화식당과 백화점에 마음대로 드나들며 돈의 위력을 뼈 속까지 체험한 것이다.


돌아와 보니 아내는 가발을 쓰고 있었다. 진짜로 착각할 정도다. 일본에서 만든 것이라는데 벗겨보지 않는 이상 그걸 가발로 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 날 밤 문성은 만사를 제쳐놓고 그 장애인 여자를 찾았다. 그녀는 혼자 살고 있었다. 새로 지은 집 방에는 별로 눈에 띄는 기물이 없이 검소했다. 하지만 그녀가 차린 상위에는 외화상점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술과 식품이 가득했다. 그러지 않아도 돈맛을 들인 그다. 그 날 밤 문성은 집에 돌아가지 않고 그녀와 동침했다.


“알겠습니다. 그래서 결국 아내를 배신했군요.”

“돈을 알게 된 후 나는 훌쩍 변해 있었습니다. 비록 정치군관학교를 마치고 돌아 왔지만, 그때까지 저지른 불법을 합치면 나는 아무 때나 잡혀 가게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 궁상맞게 겨우 밥이나 때우는 생활엔 신물이 나더라고요, 부끄럽지만 사실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혼을 결심하게 됐지요.”

“북에서, 그것도 보안원 옷을 입은 자가 이혼하면 스스로 옷를 벗어야 한다고 알고 있는데, 그것까지 각오했습니까?”

“그럼요! 그까짓 군복 귀찮았어요. 그 여자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아니 돈만 부담 없이 쓸 수만 있다면 사형이 아닌 모든 것을 감당할 배짱이 생겼죠.”

“그래서 이혼을 했습니까?”

“네! 일 년 뒤 나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그녀를 정식으로 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눈에 선하지만 그때 그렇게 기뻐하던 그녀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네요.”


그녀는 무척 외로워했다고 한다. 돈은 많았으나 사랑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 그녀에게 다가간 문성은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남자였으리라. 더욱이 자기 같은 장애자 때문에 군복까지 벗는 것도 마다하지 않은 그 마음에 감동해서 울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아낌없이 가산을 나눠 문성이 버린 가족까지 먹여 살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들이 함께 살기시작하자 보안서에서는 비밀리에 조사를 진행했던 것이다. 조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그것을 알게 된 김문성은 친구 주선으로 중국으로 도주하게 된다. 그는 다시 중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 과정에 상당한 비용이 들었지만 그녀는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그 돈을 모두 대 주었다.


2, 아린 추억

함께 떠나자고 했을 때 그녀는 머리를 저었다. 그때 둘이 나눈 대화를 문성은 울먹이며 들려줬다.

“당신과 함께 한집에서 산지가 일 년 밖에 안 되네요.”

“이러지 말고 함께 떠나지?”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그건 안 돼요.”

“왜 몸이 불편해서? 아니 나만 믿어, 내가 안고서라도 갈 수 있으니,,,”

“말 말아요, 난 여기서도 잘 살 수 있어요,”

눈물 머금은 그녀의 맑은 눈이 부드럽게 문성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결국 혼자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떠나 온 이후 나는 한국에 살면서 맨 먼저 알아 본 것이 바로 내 아이들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본처 목소리를 전화로 듣게 되었는데, 그녀는 젖은 목소리로 말하더군요. 고맙다고, 당신이 보내준 돈으로 지금 아무 걱정 없이 살고 있다고요. 난 사실 아무것도 보내준 것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그럼 그 돈은?”



“네 바로 그 여자죠, 나하고 함께 떠나지 않겠다고 말한 이유가 바로 그건가 봅니다. 내가 떠나면 두고 가는 아이들은 누가 돌보는가 걱정한 모양입니다.”

나는 울먹이는 문성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들었다.


장애의 몸이지만 국경을 넘는 일은 그녀도 마음만 먹으면 해 낼 수 있다. 돈이 힘이 받침하면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비록 불륜 속에 꽃핀 반쪽짜리 사랑이긴 하지만 그것이 듣는 이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유가 있었다. 그 여자의 사랑은 결코 이기적이지 않았다. 어떻게 가꿔야 하는가를 실지로 보여줬다. 그래서 문성은 지금 더욱 괴로워하는 것이다.

내가 말했다.

“정말 고마운 여성이군요, 오늘 힘든 이야기를 저에게 들려 줬습니다. 한 여자를 위해 군복까지 포기한 그러한 일은 정말 옛날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이었는데,”

“저를 포장하는 감이 듭니다만 오늘의 북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당이나 국가를 위하기보다 자신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답니다. 또 그렇지 않으면 실지 살아남기 힘드니까요.”

“당국에서 금지시킨 그 속에 진정한 삶의 질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이젠 알아버렸으니까요. 안 그런가요?”

“그렇죠. 이런 이야기를 꺼낸 제가 정말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헌신해 주는 사랑이 있어 저의 오늘이 부끄럽지만은 않습니다. 그 여자는 내가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게끔 만들었습니다. 이제 며칠 후면 저의 본처와 아이들이 모두 국경을 넘어 저에게로 옵니다. 그 여자의 주선으로 말입니다.”


문성은 갑자기 큰 울음을 터트리며 목 놓아 울었다. 나는 충분히 그 울음의 깊이를 알고 있었다.


이름은 알려주지 않아 모르지만 정말 대단한 여자다. 아니 앞길을 아는 여자라고 봐야 했다. 내 나름의 생각이지만 그 여자가 문성을 따라 이곳에 왔다면 이렇게 듣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에 젖게 하지 못했으리라, 그녀는 위기에서 자기를 구해 준 은인에게 감사했고 진실로 사랑하고 싶은 남자에게 사심 없는 헌신을 했을 뿐이었다. 거기엔 자기를 위한 티끌처럼 작은 그 무엇도 없었다. 무엇인가 알고 그 준칙에 충실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열매를 안은 여자다. 그래서 돋보이는 것이다. 그런 성품이 있기에 여인은 그 살벌한 보안서의 철창에도 갇히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디서 그런 성품을 얻었을까?!

그러면서 나는 문성과 그 여자를 통해 비쳐오는 오늘의 북한주민들의 삶을 그려봤다.

이제 그들은 자기운명을 개척하는 길이 ‘위대한 당’이란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고 당당히 선택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법을 다루는 사람의 머리에 새어 든 이와 같은 또 다른 충실성은 비단 그것이 불륜이라 하여도 북한 권력기관의 한 사람이었다는 의미에서는 많은 생각을 불러오고 있었다.

헤어질 때 문성은 이런 말을 보탰다.


“추억이 너무 쓰려 견딜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와도 온통 그 여자 생각만 하면 어떻게 하지요? 난 이래저래 미안한 마음으로 평생을 살 것만 같습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인간냄새가 나는 진심일 겁니다. 그 진심은 사람을 반듯하게 만들어 주지요, 그 여자도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열심히 삽시다.”


글정리; 이근명(해남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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