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의 수기

    등록일 : 2011-02-11 오전 1:43:39  조회수 : 3420
  25 . [퍼옴글] 잊을 수 없는 사람-전혜미
  등록자 : Paull Kim        파일 :


잊을 수 없는 사람의 친근한 모습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다.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이 사람의 모습은 귀중한 자산으로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서 늘 삶의 의미를 북돋아 준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영원히 꺼질 줄 모르는 사심 없는 사랑의 잣대로 내게 남겨진 생을 보듬는 것처럼 의미 있고 소중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문득 만나 문득 사라진 사람이여도 내 심장 속에 고이 남겨진 사람, 그는 나에게 영원히 꺼질 수 없는 삶, 아니 사랑의 등대와도 같은 사람이었다.

봄빛 같은 사람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 지금까지 생활한 2년, 이 2년 세월이 지난 40여년 살아온 생보다 더 소중하게 간직된 것은 이제 말하려는 그 사람이 내 곁에 머무른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갓 사회에 나와 무엇을 어떻게 어느것부터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던 내게 바람처럼 소리 없이 다가온 남쪽 남자가 있었다.

물론 지인의 소개로 만난 사람이었지만 처음엔 이성으로서 아무런 호감도 안가는 사람이었다. 하나원을 나오자부터 김밥집, 일당을 구하는 식당을 돌아다니며 알바를 하던 내게 다가온 그 사람은 매우 수집은 어리 무던한 사람이었다.

그때까지 내 머리를 꽉 채운 것은 같은 민족이긴 하지만 서로 다른 이질화된 문화 차이가 있어 진실한 동거동락이 말처럼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었다.

생각이 그러하다보니 남자는 정을 갖고 다가들었지만 나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내 가슴을 울리는 말이 그 남자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저의 이름은 신용식입니다. 현재 중장비기사구요, 장가도 갔었어요, 이혼한 처는 사기전문가였습니다. 듣건대 선생님은 고학력자라는데 저는 겨우 초등학교를 나온 사람입니다. 수입은 높은 편이나 지금은 천 오백만원의 빚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그저 빚일 뿐 내 마음엔 빚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아니??”

그 사람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놀랐다, 어찌 반려자로 생각하며 처음 만난 여자 앞에서 이 같은 말을 아무 꺼림 없이 할 수 있을까? 혹시 항간에 도는 말처럼 내가 북한여자이기에 업신여겨 아무 말이나 내 뱉는 건 아닐까? 그러나 그의 마지막 말이 이상한 여운으로 내 가슴에 박혀들었다.

마음속엔 이미 빚으로 남아 있지 않다?! 그건 삶에 대한 사랑과 확신만이 가져다 줄 수 있는 말이었다. 떠듬떠듬 힘들게 말하면서도 눈빛만은 어눌하지 않고 새별처럼 반짝인다.

여자 앞에서 허세를 떠는 여느 남자들과는 달리 어딘가 모르게 진실감이 넘치는 눈빛이었다.

대체로 많은 남성들이 여자가 맘에 들면 우선은 낚으려 별의별 허세를 다 부린다. 그 다음 사랑이 무르익은 다음엔 허점이 드러나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런 맞선보는 장소에서까지 솔직하게 자기를 밝히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제가 정말 마음에 드세요?”

내가 얼결에 던질 번한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첫 만남에 어떻게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것은 그 남자가 던진 말속에 이미 내 이성이 나를 떠나 스스로 빨려들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 남자의 말이 계속됐다.

“여자를 만나 이렇게 가슴이 울렁거려 보기는 처음입니다. 20대 총각 시절에도 느끼지 못하던 이 울렁거림이 나를 다시 청춘으로 돌려놓는 것 같네요, 정말 허락만 해 주신다면, 난 정말 그, 그 사랑이라는데 충실 할게요, 이건 정말입니다.”

그는 사랑만은 진정 하늘에 맹세한다고 곱씹어 말했다.

일단 나는 서로 지내보며 조금 더 깊은 내역을 쌓으리라 맘먹었다.

그 사람은 퇴근하면 곧바로 나를 찾아와 대청댐을 비롯한 경치 좋은 곳들을 구경시켜 주었다. 나는 마침 컴퓨터학원수료와 동시에 ITQ자격시험준비로 알바를 더는 할 수 없어 오후시간에는 열심히 자격고시준비하고 있어 해가 짧은 겨울철 저녁시간에만 그와 데이트 할 수 있었다.

그는 열심히 일하면서도 저녁 퇴근시간만 기다리는 듯 했다.

어느덧 자격고시도 성과적으로 치렀고 그이와의 사랑도 조금씩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지내보니 정이 너무 많은 사람이었다. 꾸밈없는 열렬한 사랑으로 나를 뜨겁게 감동시켰고 하여 나는 어느덧 그이와 함께할 내 일생까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서울에 있는 친구한테서 취직할 직장에 면접을 보러 오라는 통지가 왔다. 나는 너무도 기뻐 준비하고 있는데 그 사람은 웬일인지 서운해 하는 것 같았다. 취업이 제대로 되어 나못지 않게 기뻐해야 했지만 내가 당당한 회사원이 되면 혹 자기에 대한 마음이 바뀔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안가면 안 돼? 여기서 쉬운 일이라도 하면서 적은 돈이라도 벌면 살 수 있잖아?”하며 연속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너무도 순수하고 나에게 더 줄 것이 없어 못주는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으려고 많이 생각해 봤다.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안심시키는 길은 대체 무엇일까?

대단한 존재도 아닌 나한테 그가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학력이 모자라 대화가 좀 불편한 적도 있지만 그 이상의 배우자를 욕심낼 마음의 여유가 나에게는 없었다.

이미 나는 이 사람에게 깊이 빠져 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람이라면 일생 변치 않고 나를 끝까지 사랑해 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자 나는 혼인등록을 결심하였다. 그래야 서울에 올라가 주말에만 만나는 그가 나를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혼인등록을 한 후 그가 하는 말이 주민등록등본을 받아들고 너무 기뻐 잠을 못 잤다 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 허벅지를 꼬집으며 온밤을 환희로 들먹였다고 한다. 나를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리도 기뻐했는지, 그는 연신 “나 같은 놈 택해주어 고마워. 이제 됐어, 능력 없는 나 때문에 당신이 서울 가서 고생하게 해 너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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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옷가지들과 간단한 주방도구를 챙겨 서울의 싼 월세 집에 입주하였고 주말에는 어김없이 그이가 있는 청주로 내려갔다. 버스터미널에 내가 도착하기 30분전부터 마중 나와 차에 태우고는 푸짐한 저녁상을 차려 주곤 했다.

토요일이면 먼저 이른 새벽에 출근하고는 자고 있는 나에게 전화로 그만자고 밥 먹으라고 재촉한다. 퇴근해 오기 바쁘게 장을 봐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해주려 법석을 떨었다. 나는 그가 해주는 음식이 별로 맛이 없어도 그 성의가 고마워 맛있게 먹어 준다. 식사 후 설거지하려고 부엌으로 들어가면 나를 포근히 안아다 침대에 눕혀 이불을 꽁꽁 여며주며 일어나지 말란다.

해종일 고된 노동하고 왔어도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즐겁다고 했다. 자기라는 존재는 이미 버리고 오직 나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그가 고마워 나 역시 금요일이 오기만 기다리는 여자가 됐다.

둘이 함께 하는 시간에는 유머와 농담으로 웃음이 그칠 새 없고 집안청소고 세탁이고 다 내가 할 사이 없이 해치웠다. 나를 사랑하면서부터 이 세상만물을 모두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다고 말하는 사람,

그는 나의 취미까지 헤아려 화분에 물주고 새로운 화초를 구입하기에 바빴고 개와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회사에서 강아지동영상도 가끔 보내주었다. 월요일이 되면 서로가 아쉬워 눈물을 흘리며 잠시 헤어진다. 주말 이틀 동안 같이한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 참으로 야속하기도 했다. 우리의 주말은 늘 그렇게 지나갔다.

그는 언제나 나를 천사라고 불렀고 늦은 밤 외부에 나가 강의하고 올 때면 “날 만나서 당신 고생 많아. 너무 미안해. 꼭 밥 잘 챙겨 먹고 푹 자. 사랑해. 이 생명 다할 때까지,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진짜야. 믿어 봐.”하고 꼭꼭 문자를 보내왔다. 진실한 사랑을 해 본적 없는 나에게는 믿기지 않는 이 현실에 너무도 행복했고 오로지 그이만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가끔 대출이 있는 그는 휴대폰요금 미납으로 풀이 죽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도와 달라고 했다. 나는 우리사이에 내 돈, 네 돈이 어디 있냐며 돈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했고 겨우 그가 과일을 좋아한다는 것 하나 알아내어 기회만 되면 과일을 사서 회사의 친구들과 같이 먹으라고 차에 실어주곤 했다.

그이는 시골의 시댁에 가서도 마누라를 내세우려고 열심히 노력하였고 부모님들은 나를 친딸보다 더 극진히 아껴주셨다. 한번은 그이를 따라 시댁에 갔더니 큰 대야에 청국장을 한가득 담아 회사의 친구들과 나눠 먹으라며 내게 주었다. 나는 연로하신 부모님들께 수고를 끼쳐드려 마음이 아팠지만 그 분들의 성의를 거절할 수 없었다. 그 외에도 내 건강을 위해 많은 보약을 지어 주고 딸들 몰래 비상용으로 남겨 두었던 복분자도 아낌없이 내주셨다.

봄에는 내가 좋아하는 산나물을 뜯느라 시부모님과 그이도 분주했고 나물들은 냉동되어 서울 자취방에 올라 왔다. 그이의 다리는 두릅나무가시에 할퀴어 상처가 났고 그걸 보는 나는 너무도 미안하고 고마워서 울었다. 내가 뭔데 이렇게까지.

문득 알바 할 때 북한여자는 남쪽의 근사한 배우자를 생각할 수 없다고 많은 소개팅을 거절했던 일도 어느덧 까맣게 잊었고 이게 정말로 나의 팔자인지 믿어지지 않아 그이께는 “당신 너무 나한테 올인 하지 마. 그렇게 사이가 좋으면 둘 중 하나가 빨리 간다고 했어” 하고 말했다. 그러면 그는 “나 이젠 죽어도 원 없어. 정말이야. 나보다 더 행복한 놈 있으면 나와 보래.”하며 행복에 젖어 두 눈을 슴벅였다.

산 설고 낯 설은 남쪽에서의 나의 생활은 이렇게 한 남쪽남자의 사심 없는 사랑에 의해 한 떨기 백합처럼 활짝 피어났다.

정말이지 그이는 찬 서리 밑에서 시들었던 북녘의 한 여자를 사랑으로 보듬어 아름다운 꽃으로 피워 낸 봄빛 같이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아, 내 사랑아

2010년 5월 18일은 내게 있어 천추에 잊지 못할 저주의 날이다. 그 날은 비가 억수로 쏟아 붓는 을씨년스러운 날이었다. 웬일인지 두려운 눈길로 빗소리 요란한 밖을 바라보고 섰는데

뜻밖에 청주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신용식씨가 누구시죠?”

“네, 저의 남편인데요. 그런데 무슨 일이?”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많이 다쳤는데 마음의 준비는 좀 하셔야겠습니다. 암튼 빨리 대전 XX병원으로 내려오세요.”

쿵, 심장이 발작했다. 불길한 예감이 온 전신을 감싸는 순간 정신이 혼미해지며 나는 비칠 했다. 무슨 정신으로 대전까지 내려갔는지 모르겠다. 제발 안녕만, 무사기원만을 바라며 병원에 도착했건만 그이는 애타게 찾는 내 얼굴 한 번 다시 보지 못하고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 세상이 이렇게 야속할 수가? 왜? 왜 하필이면 그이를? 이제 함께 한지 겨우 넉 달, 그이의 품이 너무 따뜻해 그 속에서 인생의 참 미를 새로 느끼며 시간마다 나를 잊고 너만 생각했던 날이 고작 넉 달 뿐이라니,

정말 그랬다. 그 사람은 분명 남이 아닌 나였다, 차라리 내가 죽은들 이렇게 가슴이 찢기진 않으리라,

여보, 그때까지 불러보지 못했던 부름이 처절하게 내 입에서 터졌다. 그저 자기라고만 부르며 응석만 부렸던 날과 달이 그렇게 후회될 수 없었다.

냉장고에 가득한 갖가지 산나물을 봐도 그이가 떠오른다.

옷걸이에 걸려있는 한복에도 인자한 그의 얼굴이 웃고 있다.

구정 때 “웬 한복이야?”하는 나에게 “당신에게 절을 하려구”하고 그가 말했다.

그러면 나는

“세상에 윗분에게 절을 올린다는 말 들었어도 마누라에게 절 한다는 말 못 들어 봤어”하며 깔깔 웃자 “마누라에게 절하는 법 내가 새로 만들 거야”

그때는 그저 그 말을 즐겁게만 들었을 뿐, 이렇게 가슴에 한으로 맺힐 줄은 몰랐다. 얼마나 응석받이였으면 받을 줄만 알고 줄줄은 몰랐을까?!

그이가 나를 기쁘게 하려고 정성껏 가꾸던 화초를 보아도, 휴대폰에 입력된 나를 꼭 안고 찍은 사진을 봐도 어느 것 하나 그이와의 아름다운 추억이 깃들지 않은 구석이 없다.

그러면 너는 그이를 위해 무엇을 하였더냐, 둘러보아라, 그이를 위해 나를 바친 흔적을 어서 찾아내야지, 하지만 별로 없다, 그래서 더욱더 힘들고 슬프다. 슬픔을 견디느니 차라리 내가 대신 죽었으면?? 아, 이건 정말 그이께 미안하고 한번만이라도 웃는 그 얼굴이 보고 싶어 견딜 수 없다.

비로소 사랑이란 무엇인지, 참다운 사랑이란 어떤 추억인지, 온 몸으로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때까지 그이를 향해 사랑해란 말 한 번 해주지 못한 나여서 애틋한 마음을 더더욱 주체할 수 없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11년을 함께 일해 왔다는 사장님도 연신 “용식아! 용식아! 미안해”를 울며 불러 식에 모인 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너무도 착하고 열심히 베풀다 간 사람, 그 사람이 내가 남쪽에 내려와 인연을 맺은 첫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비극의 이 현실이 너무 싫어 막 미칠 것만 같다. 지금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그이를 잊을 수 없어 참을 수 없는 그리움을 안고 혼자서 그이가 누워있는 산으로 찾아가곤 한다. 그리고는 부르짖는다.

“미안해 여보, 남쪽에 와서 당신같이 정 깊은 사람을 만나 난 너무 행복했어요, 차게만 느껴졌던 이 땅에 뿌리를 내려주고 사랑을 알게 해준 당신, 어린애처럼 당신의 품이 있어 난 북녘마을에서 잃어버렸던 삶의 향기를 모두 되찾았습니다. 당신의 사심 없는 사랑 속에서 이제야 사람 사는 세상에 다시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훌쩍 가버리면 난 어찌하나요, 야속합니다. 아무리 돌아봐도 당신에게 내가 해준 건 아무것도 없군요. 그래서 더 속이 아픕니다.

어쩌면 그렇게 가셔요, 조금 더 내게 시간을 주면 안 되었던가요?

너무 그립습니다. 당신을 순간도 잊을 수 없어 울며 지새는 밤, 이 야속한 이별의 서러움을 대체 무엇으로 달래야 할지, 사랑합니다. 여보”

나는 평생 해보지 못했던 사랑합니다란 말을 그렇게 진정을 담아 눈물 속에 애타게 불러 보았다.

그 부름은 입이 아닌 내 가슴속에서 울린 사랑의 메아리였다.                         (지월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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