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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8-12-11 오후 10:11:11  조회수 : 3388
  2616 . 탈북자 인신매매: 8년간 섹스캠에 시달린 20대 탈북 여성의 탈출 이야기
  등록자 : BBC        파일 :

 

2018년 10월의 어느날 오후 4시. 중국 연길의 한 아파트에서 젊은 20대 여성 두 명이 밧줄을 타고 탈출한다. 밑에서 대기하고 있던 자동차를 타고 도망 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0분. '섹스 캠걸’로서 감금 생활을 한지 5년에서 8년 이라는 세월이 지난 후였다. 15여 일에 걸친 이들의 탈출 여정의 일부를 BBC 코리아가 동행 취재했다.

취재: 황수민  
촬영·편집: 최정민
2018년 12월 10일

탈북하자마자 인신매매로 한 조선족 '사장에게 팔려갔던 이 두 여성은 이제 중국을 가로질러 근처 동남아국가로 밀입국해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난민 신청을 할 계획이다.

1. 탈북


△ 감금됐던 아파트에서 탈출한 후 두리하나 쉘터로 향하는 미라와 지연 [사진제공: 변재길, '코리아 합창단' 제작팀]

북한에서 중국영화를 보고 완전히 빠진 거예요. 중국 남자는 다 이렇구나 생각해서 그때부터 사회 나가서 계속 탈북을 알아봤어요.

수줍은 미소에 사근사근한 말투의 미라(가명, 27)는 당원이었던 아버지의 압박을 견디기 힘들어 3~4년 동안 탈북 방법을 모색했다고 한다.

저는 의사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집에서 공부를 안 시켜 주고 군대도 못 가게 했어요.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아무 것도 못 하게 하니 (중국으로) 가야 되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와 연루되는 것을 꺼려했다. 인민위원회와 연결돼있는 미라의 가족 때문에 미라가 그들을 보고해 색출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미라는 탈북을 도와줄 브로커를 만나 두만강을 건너지만, 그는 사실 돈을 받고 여자를 넘겨주는 인신매매 그룹의 일원이었다.

난 그냥 식당에서 일을 못 하면 시집이라도 가겠지 그런 마음으로 간 거에요.

중국에 와서 좋은 남자 만나서 연애나 하면서 자유를 꿈꾸고 왔어요. 그 남자도 우리가 식당에 가서 돈 벌면서 평범하게 살 거라고 나를 속였어요.

한 조선족 가정에 넘겨진 미라는 도착한 다음 날 캠걸로 일해야 한다는 설명을 듣는다.

북한에서는 이런 걸 보고 '컴퓨터 성봉사'라고 해요.

일을 하지 않으면 북으로 돌려보내겠다는 사장의 엄포에 미라는 온 김에 딱 2년만 일하기로 결심했다. 사장은 새로 들어온 탈북 여성들을 예전부터 섹스캠 일을 하고 있는 언니들과 짝을 지어 방을 배정해 줬다. 보고 배우라는 의도에서다.

그렇게까지 하는 줄은 몰랐거든요. 그런데 언니가 과감하게 막 하는 거예요. 너무 버젓하게 내가 보는 데서 다 벗고. 그게 너무 기막혀가지고 울었어요. 내가 저런 것을 해야 하나… 그렇게까지 생각 못 했는데. 여자로서 너무 수치스러웠어요. 내가 그래서 막 우니까 고향 생각이 나서 우냐고 하더라고요. 난 그것 때문에 운 게 아닌데.


△ 성인화상채팅 사이트에서 천기원 목사와 대화하는 지연의 모습 [사진제공:천기원]

2010년 3월, 당시 16살의 나이에 북한을 나왔다는 지연(가명).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한 이후로 가난에 시달리던 지연은 중국에서 돈을 벌어 오기로 결심했다. 브로커는 시집 팔리는 게 아니니 일만 열심히 하면 북에도 다시 보내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지연을 중국으로 데리고 갔다. 섹스캠 일을 하게 될 거란 이야기는 하지 않은 채. 하지만 사장은 지연을 보고 퇴짜를 놨다. 지연은 연애 경험이 한 번도 없고 일만 하다 살아왔으니 까맣게 타고 볼품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사장은 지연에게 북으로 돌아가라고했다. 하지만 돈이 필요했던 지연은 그를 설득해 연길에 남게 됐다.

일을 잘하면 가족과 연락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사장의 약속을 믿었던 지연은 자고 눈 뜨면 컴퓨터에 앉아 일해서 첫 3~4년은 악을 쓰고 살면서 꾸준히 1등으로 수익을 올렸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하루에 20만 원을 목표로 했고, 일주일에 평균 130만 원에서 150만 원, 최대 180만 원을 벌었다. 계약상으로는 수익의 40%는 사장, 40%는 여성, 나머지 20%는 생활비로 하기로 돼 있지만, 실제 여성들에게 허락된 사용 금액은 수익의 25~30% 정도였던 것 같다고 지연은 말했다. 대문으로 들어와 대문으로 나가고 싶었다던 지연은 탈출 시도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탈출 시도를 하고 반항하는 미라를 달래며 일단 일을 열심히 하고, 그래도 사장이 안 보내주면 그때 가서 논리적으로 말하면 되지 않느냐고 설득했다.

나는 주인장의 예쁨을 많이 받았죠. 난 그게 인간적으로 날 사랑해주는 줄 알았는데 캐시가 떨어지면 표정이 변하더라고요. 하루하루 눈칫밥을 심하게 먹었어요.

2. 중국 감금생활


△ 중국 탈출 후 동남아 국가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지연

미라와 지연이 감금된 아파트는 항상 문이 닫혀있었다. 특히 미라에게 섹스캠 하는 방법을 가르쳐준 선배 언니와 다른 탈북 여성이 함께 도망간 이후로 감시는 더 강화됐다. 미라와 지연은 사장의 부모를 할매할배로 불렀다. 3일에 한 번씩 아파트를 방문하던 할매와 할배가 이사를 와 거실에 침대를 두고 입구를 지켰다. 할매가 여성들이 원하는 물품을 사다 주었고 사장이 음식을 배달해 줬다. 사장의 동생은 근처 아파트에 살면서 매일 오전 8시쯤 방문해 여성들의 쓰레기통을 비워주었다. 집 입구는 물론이고 미라와 지연의 방문은 항상 잠겨있었고 안에서는 열 수 없게 돼 있었다.

이건 완벽한 감금이에요. 감방보다 더하면 더한.

여성들은 6개월에 한 번, 캐시를 많이 올리면 한 달에 한 번 정도 바깥나들이를 할 수 있었다. 그럴 때는 쇼핑을 하거나 밥을 먹거나, 머리를 하러 갔다. 지연은 8년 동안 노래방도 두세 번 갔다고 한다. 미라는 그 시간이 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우리가 언제 튈지 모르니 사장은 연인처럼 이렇게 가까이하고 걸어갔어요. 내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싶은데 그게 안 돼요. 딱 옆에 붙어 다니고. 물 한 병 사는데도 다 그 사람이 했어요. 말도 못 하게 하고.

모두 북한에서 건너와 한 집 생활하는 여성들이었지만 그 관계 또한 항상 순탄하진 않았다. 아파트에서는 때에 따라 3명에서 9명까지 같이 생활했다고 한다. 예전 고위급 간부들을 상대했던 평양언니는 사장과 남자와 여자의 관계라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었다. 미라와 같은 방을 썼던 여성은 관리자 역할을 했다고 미라는 설명한다.

걔는 사장한테 충실한 똥개라고 말하면 되죠.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수시로 보고하고 채팅하는 것도 들여다보면서.

일 잘하면 좋은 남자를 골라 시집 보내주겠다.

가족에게 연락해주고 싶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한국 보내주려면 6천만원이 필요하다.

보내주려고 했는데 요새 감시가 심하고 브로커를 구할 수가 없다.

사장의 말은 바뀌고 또 바뀌었고 미라와 지연의 마음은 점점 조급해졌다.

지연은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고, 미연은 방안 모기장을 가위로 잘라내고 탈출을 시도하다가 4층에서 떨어져 허리와 발목을 심하게 다쳤다.

8년 동안 단 한 번도 가족에게 연락을 안 해줬어요. 내가 수시로 말했거든요. 가족들에게만 연락해 달라고. 난 가족들이 내게 전부이고 하늘이란 것. 하늘이 무너지고 내 꿈이 사라지는 마음을 아느냐고 물어봤더니 대답을 회피하더라고요. 그러고 한다는 말이 나보고 나약하대요.

이들의 반항에 사장은 때로는 위로의 말로, 때로는 주먹질로 대응했다. 그렇게 미라에겐 5년, 지연에겐 8년의 세월이 흘렀다. 둘의 결정적인 탈출 기회는 미라가 섹스캠 일을 하며 3년 정도 알고 지낸 한국 남성을 통해 생겼다. 이 남성은 미라를 대신해 두리하나의 천기원 목사에게 연락했고, 원격 조정을 통해 미라 컴퓨터에 카카오톡을 설치해줬다.

3. 구조


△ 2018년 9월 말, 천기원 목사에게 온 구조요청 문자 [사진제공:천기원]

1999년, 탈북자 지원단체인 두리하나를 설립한 천기원 목사는 지난 20년 동안 1,200명 이상의 탈북자 탈북을 도왔고 아직도 한 달에 두세 번 꼴로 구조 요청이 온다고 주장했다. 천 목사는 지금까지 수많은 인신매매 탈북 여성을 만나 봤지만, 보통은 1년에서 3년 정도 갇혀있는데, 이번 사례처럼 5~8년 감금된 사례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천기원 목사는 웹사이트 고객으로 가장해 두 여성과 1:1 채팅을 신청하는 방식으로 미라와 지연에게 연락하며 한 달 동안 탈출 방법을 모색했다.


△ 연길 아파트에서 성인화상채팅 사이트를 통해 천기원 목사와 대화하는 미라 [사진제공:천기원]

천 목사는 여성들이 감금된 아파트 주변 호텔을 구글 지도로 검색해 정확한 주소를 파악한 후, 사무실 직원 3명을 파견했다. 예전엔 모든 구출 작업을 직접 혼자 했지만 2001년 탈북자를 돕다 중국에서 체포돼 감옥살이를 한 이후로 더 이상 중국에 들어갈 수 없게 됐다. 이번 구출 작전에서 제일 어려웠던 부분은 그들을 바깥으로 탈출시키는 과정이었다고 천 목사는 설명한다.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했죠. 키를 따고 들어갈까, 아니면 안전하게 사다리차를 빌려서 할까, 아니면 밧줄을 보내 묶어서 내려오게 하는 방법을 할까

결국 택한 방법은 밧줄. 미라와 지연이 이불을 찢어 내리고 두리하나 직원이 밧줄을 묶어 다시 올려 보냈다. 미라는 당시 상황에 대해 밧줄을 잡았는지 어쨌는지 아무런 힘도 안 느껴졌다면서 그때 와준 사람이 알려준 방법대로 발을 감고 손도 감고 그렇게 내려왔다고 회상했다. 지연의 마음은 어땠을까.

만약의 경우 잘못되면 북송되는데, 그러면 나는 목숨을 무조건 끊어야 해’하는 마음으로 나왔어요. 담담했어요. 내 운명에 맡기자는 마음으로 떠났어요. 나오기 전엔 다리가 달달 떨렸지만요.”


△ 2018년 10월, 감금된 아파트에서 탈출하는 미라

△ 중국 국경을 넘은 후 자동차에 올라타는 미라와 지연
[사진제공: 윤여훈, 변재길, 이준규]

4. 중국을 떠나다

탈북자의 여정 중 제일 위험한 고비는 바로 중국이다. 특히 최근 중국이 스마트화되면서 중국 이동은 더욱더 어려워졌다. 예전에는 탈북자들이 가짜 신분증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공안들이 기기로 신분증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때문에 탈북자들이 검사에 걸릴 수 있는 위험성이 커졌다. 또한 빠르게 IT화 돼가는 중국에서 기차표 구매나 호텔 체크인 등 많은 부분에서 통신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신분증이 필요하다.

천기원 목사의 설명이다.

예전에는 국경을 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어요. 그런데 지금은 한국에 온 많은 탈북자가 브로커 일을 하기 때문에 탈북 루트는 잘 발달해 있죠. 하지만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을 그 국경선까지 이동시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힘들기 때문에 그 부분을 저희들이 가장 많이 신경 쓰죠.

신분증이 없는 미라와 지연은 일주일간의 중국 여행 동안 제대로 된 침대에서 자본 적이 없다. 호텔에 체크인하지 못해 기차역이나 식당 등에서 쪽 잠을 잔 게 전부다. 중국 국경지역에 다다르기까지 두 여성은 총 5개의 검문소를 지났고, 다행히 별일 없이 무사히 통과했다. 그리고 5시간의 산행 후 현지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 중국 국경을 넘었다.


△ 동남아 국경지역 산속에서 미라와 지연을 안내하는 브로커

통상적인 탈북 루트로는 중국을 나와 태국,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 등을 거쳐 한국으로 간다. 국경을 몰래 넘는 과정에서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 바로 전문 브로커다. 보통 이들은 과거에 마약 판매나 불법 보따리 장사를 하던 현지인들로, 한 명당 200만 원에서300만 원 정도를 받고 탈북자를 밀입국시킨다. 물건 밀수를 하던 이들이 그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 밀수를 하는 셈이다. 이번 탈출 과정에 고용된 브로커는 두 명. 이 외에 중국에서 여성들의 탈출과 이동을 도운 두리하나 직원 몇 명은 과거에 천기원 목사의 도움을 받아 탈출했던 탈북자들이었다. 구출 비용으론 대략 총 1,500만 원 정도가 사용됐는데 이는 보통 다섯 사람을 구출할 수 있는 비용이라고 천 목사는 설명했다.


△ 중국 국경을 넘은 후 동남아 국경지역에서 천기원 목사와 처음 만난 미라와 지연

중국 국경을 넘어 동남아국가에서 천 목사와 만나게 된 미라와 지연은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저쪽 산 넘을 땐 많이 무서웠어요.

저희는 안전한 거예요?

좋아서 우는거예요

이제 천 목사는 이 여성들을 직접 데리고 대한민국 대사관으로 갈 예정이다.


△ 비가 오는 오후, 동남아 국가 버스정류장에 혼자 서있는 지연.
8년 만에 맞는 비라고 지연은 설명했다

5. 대한민국 대사관으로

중국 국경을 넘은 후 산을 타고 내려오는 이 길은 탈북 루트로 자주 사용된다.  

천 목사에겐 익숙한 길이지만 탈북자들은 다음 숙소까지 달리는 네 시간의 산길을 유난히 힘들어한다고 한다. 평소 차를 자주 타지 않았었기에 이런 차량 이동이 더욱더 힘든 것이다.

이 길을 가보면 알겠지만 5미터 이상 똑바로 가는 경우가 없어요. 계속 S자로 가니까. 긴장하면 멀미를 좀 안 할 줄 알았는데 멀미는 긴장을 해도 하더라고. 나중에는 토하다가 토할 게 없으면은 기절해 버리기도 하고. 이 구간이 유난히 좀 그래요.

1999년부터 직접 탈북 루트를 개발한 천기원 목사는 현재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는 예전에 비해 꽃길이라고 설명했다.

이 길은 지옥 같은 길이죠. 이 길을 천국 찾아서 오는 거니까.


△ 연길 아파트를 탈출하며 지연이 챙겨온 소지품. 크림, 물티슈, 팬티라이너, 아이라이너, 빗

△ 연길 아파트를 탈출하며 미라가 챙겨온 소지품: 반창고, 안약, 비상약

현지 브로커가 미리 예약해 둔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미라와 지연은 아침 일찍 차에 오른다. 대사관까지 가려면 적어도 14시간은 운전을 해야 한다. 첫 몇 시간은 천 목사가 대여한 봉고차를 타고 이동을 하지만, 이들은 중간에 대중 침대버스로 갈아탄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동해야 검문소에서 신분증 검사를 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이미 예약해 뒀던 숙소도 도중에 다른 곳으로 바꾸었다. 혹시나 모를 도청과 루트 노출 위험을 대비한 안전책이다. 국경지역에서 대사관이 있는 수도로 이동하는 데만 차로 걸린 시간은 27시간.

대사관 도착을 앞둔 미라는 눈물 날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굳은 표정으로 십자가 목걸이를 꽉 움켜쥔 지연은 지옥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만감이 교차해요. 진짜 한국에 가면 다신 가족들을 못 볼 수도 있고. 그래서 미안하기도 하고. 사실은 그런 의도로 집을 나온 게 아닌데 너무 가족들에게 미안해요.

한국에 입국하게 되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을까. 탈북 과정에서 중국어와 영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이들이 부러웠던 미라는 여행 가이드가 되는 게 저의 꿈이라고 말했다. 지연은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친구들과 대화도 하면서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전했다.


△ 천기원 목사와 함께 대한민국 대사관으로 들어가는 미라와 지연

탈북 여성들을 사고 파는 행위를 중국 현지에선 조선 꽃 돼지장사라고 부른다. 인신매매를 당한 탈북 여성의 70~90%가 인터넷 사이트, 노래주점, 집창촌 등에서 성매매를 강요받는다. 여성들의 가격은 나이에 따라 수백 달러에서 수천 달러까지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 불법체류자로 체포돼 북송의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탈북 여성들은 때론 자발적으로 성매매 업자에게 팔려가거나 강제결혼을 하기도 한다. 미국 국무부는 매년 발표하는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북한을 16년째 연속 최악의 인신매매국으로 지정하고 있다.

2014 유엔 북한인권 보고서, 2018 현대 노예제도 지수 등에서도 북한의 인신매매 실태에 대한 심각성이 거론된 바 있다. 1990년대만 해도 12%에 머물렀던 탈북자 여성 비율은 현재 86%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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