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마당

    등록일 : 2018-03-24 오후 6:32:50  조회수 : 654
  2548 . 한쪽 다리 없는 나도 누군가에겐 희망 … 패럴림픽이 준 선물
  등록자 : 중앙일보        파일 :

특별히 할 말이 없어도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웃음과 기쁨을 주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하다. GCC Jae Park 목사님과 지훈형제, 이재은 커피목사님과 Amy자매, 2018 평창 패럴림픽 개회식에서 의족을 찬 채 줄을 잡고 슬로프를 오르는 성화 봉송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겼고, 한국 장애인 아이스하키 사상 첫 패럴림픽 메달(동메달)을 획득 한 아이스하키 대표 팀의 주장 한민수 선수가 ‘두리하나’를 방문했다.

[스포츠 오디세이] 평창 동메달 따고 은퇴하는 썰매 하키 대표 한민수

▲ 한민수 선수는 ’강릉하키센터를 꽉 메운 7000여 관중의 함성을 들으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응원 덕분에 가진 것 이상의 에너지를 발휘했다“며 감사를 전했다. 그는 ’내 얘기를 듣고 용기를 얻는 분들이 많더라“며 전문 강사로 나설 뜻이 있음도 밝혔다.

다섯 살 소년이 집 앞 공사장에서 놀다 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쳤다. 치료가 늦어지는 바람에 오른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의사 선생님은 “조금 지나면 다리가 다시 날 거야”라고 말했다. 아이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지만 잘린 다리는 다시 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정승환(31). ‘빙판 메시’라 불리는 대한민국 파라 아이스하키(썰매 하키) 대표팀의 골잡이다. 파라 아이스하키 대표팀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우썰탄)’에서 정승환은 말한다. “어릴 때는 다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그런 게 없어졌습니다. 지금의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됐기 때문이죠.”
 
지난 18일 막을 내린 평창 겨울패럴림픽에서 한국 파라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3~4위전에서 이탈리아를 1-0으로 꺾고 사상 첫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죽을 힘을 다해 승리를 지킨 선수들은 빙판에 둥글게 모여 태극기를 펼쳐 놓은 뒤 ‘무반주 애국가’를 불렀다. 모두 울었다.
 
지난 22일 경기도 이천 장애인훈련원에서 파라 아이스하키 대표팀 주장 한민수(48) 선수를 만났다. 그는 은퇴경기에서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았다. 골수염을 앓아 어릴 적부터 목발을 짚고 다녔던 그는 30세에 왼쪽 다리를 절단했다. 그는 장애인 역도 대표선수를 거쳐 2000년부터 파라 아이스하키 대표팀을 지켜 왔다. “5000만 대한민국 국민 중 5%인 250만 명이 장애인이라고 합니다. 그 중 90%가 중도장애죠. 이들을 분노·좌절·원망의 골방에서 밝은 세상으로 이끌어내는 게 스포츠입니다. (정)승환이 말처럼 스포츠는 장애를 받아들일 수 있는 자신감을 주거든요.”
 
그와 장애인 스포츠의 현실과 방향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다.

질의 : 이탈리아전 얘기를 듣고 싶다.
응답 : “우리가 3피리어드 3분 18초 남기고 골을 넣었다. 선수들에게 “눌러, 눌러”만 반복했다. 올라오는 흥분을 누르고 냉정하게 자리를 지키라는 뜻이었다. ‘10,9,8…’ 하는 관중석의 카운트다운 소리도 생생히 들렸다. 그 10초가 2시간처럼 길었다. 애국가 부를 때 난 우느라고 정신이 없었는데 나중에 보니 전부 다 울더라.”
질의 : 그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아이스하키 전용 링크를 만들어 달라고 건의했다던데.
응답 : “우리는 운동할 링크를 찾아가 새벽 1시부터 2시간 연습하고 아침 7시에 출근한 적도 있다. 대부분의 링크가 턱과 계단이 높다. 새 시설을 지어주면 좋겠지만 기존 링크를 살짝 리모델링해서 턱을 없애고, 빙판을 들여다볼 수 있는 투명 펜스를 조금만 낮춰도 장애인이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쓰는 스포츠 시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질의 : 대통령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특별한 관심을 보였는데.
응답 : “최근 50일 사이에 다섯 번 뵈었다. 함께 응원하고 웃고 울며 멋진 추억을 만들어 주셨다. 내가 이탈리아전 전날에 선물을 드리고 싶다고 했고, 내 저지(유니폼)를 아내 통해 전달해 드렸다. 우리로선 든든한 원군을 얻은 기분이다.”

질의 :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던데, 기억 나는 사람이 있나.
응답 : “20대 초반 남자 자원봉사자가 등에 사인을 해 달라며 ‘아버지가 장애인 육상 선수셨는데 메달은 못 땄어요’라고 했다. 동메달 따고 다시 만났는데 편지를 주더라. ‘전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한 적이 없어요. 근데 한민수 선수와 하키 선수들을 보면서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게 됐어요’ 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고 있구나….”

한민수 선수

‘울보’ 한민수는 이 대목에서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후, 죄송합니다. 오늘은 진짜 안 울려고 했는데…”라며 한참 동안 감정을 추슬렀다.
 
영화 우썰탄에는 “(저승) 갈 때 순서가 없는 것처럼, 장애인 되는 것도 순서가 없다”는 대사가 나온다. 한민수는 “난 두 살 때 침을 잘못 맞아 이렇게 됐다. 사춘기와 질풍노도 시기를 다 겪었다. 이게 내 삶인가 보다 하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중도에, 군에서나 제대 후에 사고를 당하면 어떨까”라며 병원에 있을 때 겪은 얘기를 해 줬다.

“조폭 행동대장이 칼침을 맞고 장애인이 됐다. 부하 30여 명이 찾아와 ‘형님, 저희가 끝까지 모시겠습니다’라며 고깃집에 가서 회식을 했다. 기분이 좋아진 행동대장이 폼을 잡고 있는데 갑자기 이상한 냄새가 났다. 바지에 실례를 해 놓고 그걸 몰랐던 거다. 그 후 행동대장은 사람을 만나려 하지 않았다. 중도장애인이 됐을 때 가장 힘든 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다.”

질의 : 장애인에게 스포츠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
응답 : “장애인으로서 또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 원동력이 되는 게 스포츠다. 난 목발을 짚고 설악산 대청봉 정상에도 올랐다. 그런데도 다리를 절단할 때는 약해지더라. 양다리를 절단한 여자 후배에게 고민을 토로하자 ‘응, 그럼 의족 하면 되겠네. 목발 안 짚어도 되고, 지금보다 낫네’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주더라.”

질의 : 비장애인이 장애인 스포츠를 보는 시선은 .
응답 : “도전과 용기를 격려하고 함께 하려는 사람도 많지만 안쓰럽고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충분히 이해한다. 우리가 비장애인 선수들처럼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줄 순 없다. 그러나 시련과 극복이라는 스토리를 갖고 있고, 비장애인 선수 못지 않게 힘든 훈련을 통해 기량을 닦았다. 재미와 의미를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

2004년 아테네 패럴림픽을 앞두고 대표선수들이 ‘패럴림픽 보이콧’을 내세우고 시위를 했다. “장애인 스포츠를 더 이상 재활과 복지 차원에서 보지 말아달라. 엘리트 스포츠로 인정하고 거기 걸맞은 처우를 해 달라”는 요구였다. 그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 스포츠 담당 부서가 보건복지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로 바뀌었고, 2005년에 대한장애인체육회가 설립됐다.
 
지난 21일 만난 전혜자 장애인체육회 사무총장은 “평창 패럴림픽에는 단체보다는 개인·가족 관람객이 정말 많았다. 아이스하키 경기장에는 수백 명이 표가 없어 돌아갔다. 세상이 바뀌고 있음을 실감했다. 미디어의 힘이 컸다. 이젠 ‘반짝 관심’이 아닌 ‘장애인 체육 시스템’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민수 선수는 “휠체어 농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똑같이 휠체어에 앉아 경기를 한다. 파라 아이스하키도 비장애인이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스포츠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 되는 통합을 꿈꾼다.

[중앙선데이] 입력 2018.03.24 02:39 | 576호 22면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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