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마당

    등록일 : 2017-07-07 오후 8:44:47  조회수 : 288
  2426 . [너희 엄마 북한 사람이야?] 예진의 연희(가명), 김명주(가명)님 인터뷰
  등록자 : HAFS12人        파일 :

너희 엄마 북한 사람이야?

하나였던 대한민국이 두 개의 국가로 분단된 지도 어느덧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으로서 북한이탈주민 청소년후원을 위한 용인외고의 나눔 콘서트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북한이탈주민청소년이 우리 주위에 있구나 하는 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북한 이탈 주민들의 현실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통일에 대한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북한 이탈 주민 청소년들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목적으로, 그들을 위한 대안학교인 두리하나 국제학교를 방문하여 북한 이탈 주민 청소년과 선생님을 인터뷰하기로 하였습니다.

저의 첫 번째 인터뷰 대상자는 초등학교 6학년인 연희(가명)였습니다 어린 학생을 인터뷰하는 것이 처음이었던 저에게도, 낯선 이와 인터뷰를 해야 하는 어린 친구에게도 불편함이 느껴졌던지 어색한 공기가 방을 감쌌고, 연희의 눈에서 왠지 모를 경계심과 불안감이 느껴졌습니다. 첫 질문을 시작하기 전 자료 작업을 위해 녹음을 해도 되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연희는 녹음이요...?”라는 말과 함께 안 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나타냈습니다. 사진도 찍지 않기를 원했고 가명을 사용하길 원하는 연희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사진이 어디에 올라가거나 해서 예전에 다니던 학교 친구들이 보면 뭐라고 할까 봐...”라고 대답하며 걱정을 내비쳤습니다.

북한 어머니와 한국 아버지 아래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라 온 연희는 일반 초등학교에 다니다 작년 11월 두리하나 국제학교로 전학 왔습니다. 자신처럼 북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친한 친구 윤지(가명)를 따라 이 학교로 옮겨왔는데, 현재 윤지와 윤지 동생 이렇게 셋이서 기숙사에서 살고 있다고 설명해주는 연희의 눈에서 조금은 긴장이 풀린 듯 즐거움이 느껴졌습니다.

혹시 일반 초등학교에 다닐 때 북한에 관련하여 자별을 겪은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자 하나의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 일반 초등학교에 재학 중일 때 친한 언니에게 어머니가 북한 사람임을 말했는데, 그 언니가 또 몇몇 친구에게 말해서 친구들이 너희 엄마 북한 사람이야?”하고 물어보곤 했답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은 대충 얼버무리고 빨리 다른 주제로 넘기곤 했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연희에게 왠지 깊은 마음의 상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겪으면서 연희는 점점 더 자신의 이야기를 숨기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연희는 곧 일반 중학교로 옮길 예정입니다. 두리하나 국제학교에서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 그리고 추억들은 너무 즐겁고 소중하지만, 한국의 일반 중학교에 다니는 것이 미래에 더 좋을 것이라는 어머니의 말에 따라 일반 중학교로 옮겨갈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일반 중학교에 다니게 되면 걱정되는 점이 있느냐고 묻자 자신이 예전에 두리하나 국제학교와 관련해서 뉴스에 나온 적이 있는데 새로 가게 될 중학교의 친구들이 그 방송을 볼까봐 걱정된다고 합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북한 사람인 것이 밝혀지는 것을 많이 걱정하는 연희를 보면서, 여느 평범한 초등학생처럼 보이지만 조금은 특별한 가정에서 살아온 연희가 많이 고민하고 또 많은 시련을 겪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걱정 속에서 첫 번째 인터뷰를 끝마치고 연희를 바래다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진도 녹음도 이름도 모두 공개되지 않길 바라는 연희의 모습에서, 그리고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어있는 연희를 보면서 북한이탈주민의 자녀로서 미묘한 사람들의 눈길과 차별을 겪으며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이 절대 녹록치 않음을 느꼈습니다. 또 직접 북한에서 건너온 북한 이탈 주민 청소년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많은 걱정을 하면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연희의 모습을 보며, 북한이탈주민 청소년들은 또 얼마나 더 많은 고민과 걱정을 할까 또 얼마나 더 많은 차별 속에서 살아갈까 하는 생각을 하게 돼서 마음이 씁쓸합니다.

13살밖에 안 됐지만, 고등학생만큼 성숙해 보였던 연희와의 인터뷰를 통해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였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사회가 아직은 북한 이탈 주민들 혹은 그들의 자녀들이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 질 당하는 것은 너무 싫어하면서, 어쩌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아무렇지 않게 그들을 향해 무언의 갑질을 하며 살지 않았는지 반성해봅니다. 같은 이웃으로서 차별 없이 평등하게 살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적 노력과 인식의 대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조선족? 탈북인? 다 같은 거 아니야?

걱정되는 마음으로 두 번째 인터뷰를 시작하였습니다. 인터뷰 장소를 들어서는 인터뷰 대상자의 표정에서 쾌활함이 느껴졌습니다. 김명주(가명)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분은 현재 두리하나 국제학교에서 집사님이셨고, 기숙사와 대안학교의 운영, 식당 관리, 학생들 피아노 반주 등 다양한 일을 하면서 대안학교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계셨습니다. 밝은 대답을 듣자 인터뷰를 진행하는 저도 긴장이 많이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혹시 인터뷰하며 사진이나 녹음을 진행해도 되는지 묻자 전혀 상관없으나 사진은 찍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 북한에 가족들이 살고 있어서...”라고 하셨고 가슴 속에서 왠지 모를 찡함이 느껴졌습니다.

김명주 집사님은 1998, 19살 때 중국으로 건너가 8~9년을 중국에서 살고 두리하나 국제학교의 목사님을 만나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하셨습니다. 북한에서는 미술, 기악, 무용, 화술(웅변, 선동 역할)을 중점적으로 교육하는 예대에서 공부하셨답니다. 북한에서 이 학교는 졸업 후 음악 선생님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이 보장되는 편이어서 부모님의 선호도가 높고, 재학했던 자신도 이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높았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기숙사 생활은 매우 열악하다고 하셨습니다. 썩은 밀가루로 만든 죽이 식사 때마다 나왔고, 난방은 전혀 되지 않았으며 한겨울에도 찬물로 세수해야 했고, 심지어는 천 생리대를 찬물로 빨아서 써야 했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4년을 지내자 점점 몸에 이상이 왔고 결국 신장염을 앓게 되었답니다. 마침 외가가 중국국경과 가까웠고, 중국에 가면 돈을 많이 벌수 있다는 말에 이끌려서 북한을 탈출해 중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북한에서의 김일성과 김정일의 존재가 갖는 의미는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정도랍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북한에서는 정말 하나님과 같은 존재라고 했습니다. 수많은 충성서약을 통해 실제로 충성심이 많이 생겼고, 북한에서 태어나서 살게 되면 그런 체제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북한 밖의 정치나 체계에 대한 정보는 전혀 받지 못하며 오로지 북한에서 가르치는 것밖에 알 길이 없었기에 반문을 할 수도, 의구심을 가질 수도 없었다는 집사님의 말을 들으며, 큰 안타까움과 함께 북한 체제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북한에서 한국으로 들어왔을 때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었냐고 질문하자 가슴을 울리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남한에서 가장 힘든 점요? 남한서 힘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사치예요!” 북한에서 남한으로 무사히 온 것만으로도 불평할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한국은 노력한 만큼 벌 수 있고 국가와 개인 또는 개인과 개인 간의 약속이나 신뢰 관계도 매우 투명하다고 하셨습니다. 단지 어떨 때는 소외감을 느낄 때가 있는데. 조선족? 탈북인? 다 같은 거 아니야?”라는 차별적인 말을 들을 땐 너무나 서러웠다고 하셨습니다.

현재 39세인 집사님은 아들을 둘 키우는 어머니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자신이 70대이신 시어머니와 대화가 된다며 한국의 60-80년대와 현재의 북한이 매우 비슷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북한에서 한국으로 탈북한 사람들은 처음에 얼마나 적응이 힘들겠냐며 걱정을 내비치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북한 이탈 주민 청소년 또는 북한 이탈 주민에 대한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질문을 드리자, 무엇보다도 중국에서 중국인 아버지와 북한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친구들도 탈북자들과 다 마찬가지인데, 그들을 위한 제도는 전혀 마련되어있지 않다며, 그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비쳤습니다. 중국인 북한인, 한국인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그들에게 아무런 경제적 지원이 제공되지 않으니, 그들은 정말 갈 곳이 없어진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중국에서 태어난 우리 동포를 위한 제도와 정책이 가장 시급한데 정작 너무나 미흡한 것 같다는 집사님의 말을 들으며, 우리나라의 북한 이탈 주민들을 위한 복지제도에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는 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북한 이탈주민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변화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남한사람들이 북한 이탈 주민에 대해 애틋함과 끈끈한 정을 많이 보내주셨는데, 요즈음의 20, 30대로부터는 전혀 그런 걸 못 느끼겠어요. 결국 같이 살아가야 하는 같은 민족이 아닌가요? 오죽했으면 자기 고향을 버리고 죽음을 무릅쓰고 탈북을 할까요? 북한 이탈 주민들은 상처가 많아요. 좀 더 부유하고 여유로운 한국 사람들이 북한 이탈 주민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동정심이 아닌 포용심을 가져주시길 부탁해요

집사님의 말씀을 다 듣고 난 후 우리가 함께 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북한 이탈 주민에 대해서 동정하는 것보다는 공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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