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마당

    등록일 : 2017-07-07 오후 7:45:02  조회수 : 459
  2424 . [기도가 이루어지다!] 이선영의 주예은님 인터뷰
  등록자 : HAFS12人        파일 :

 

기도가 이루어지다!

하나님은 없어.” 탈북 후 1년 뒤 자신을 뒤따라 탈북을 시도하던 친언니가 잡히고, 남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었던 예은 언니에게 누군가 속삭이듯이 얘기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악마가 분명했습니다. 악마의 속삭임은 언니가 기도하는 내내 울림이 되어 언니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기독교에 대한 신념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언니의 마음은 더 지치고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곧 언니는 두 손을 더욱 꼭 잡고 더 크게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해주세요. 제발 언니를 구해주세요.’ 그리고 정말 기적적으로 친언니는 13시간 만에 풀려나 예은 언니 곁으로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니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 기독교는 언니의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낮에는 두리하나 국제학교에서 근무하고 밤에는 야간대학에 다니는데, 전공을 신학으로 선택해 기독교에 대해 좀 더 깊이 배우기로 했습니다. 북한에서 지내면서 기독교를 믿는다는 건 사형으로 이끄는 터무니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던 언니가 종교를 가지게 되고 심지어 신학대학에 들어가다니, 그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1년이 지난 지금 언니는 남한 생활에 적응해 나가고 있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 특별히 싫어하는 분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과 경쟁의 구도에 놓여 있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래도 실력의 차이는 확연하게 느낀다고 합니다. 특히 영어가 시도 때도 없이 발목을 잡아 힘들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5시 반에 새벽기도를 하고 저녁 6시까지 두리하나 국제 학교에서 근무한 뒤, 밤에 대학 강의까지 마치고 12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들 수 있어, 뉴스 볼 시간조차 없는 일정 때문에 따로 영어를 따로 영어를 배울 생각조차 못 합니다.

그래서 언니는 시간을 틈틈이 쪼개어 영어공부를 하고, 또 책도 읽습니다. 책은 한 달에 5권정도 읽는데, 자서전이나 전기 등 어려운 처지인 사람이 성공하기까지 어떤 길을 걸었는지, 어떤 노력을 들였는지에 대한 책을 주로 읽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얻는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학문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바쁜 일정 때문에 친언니와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여유도 없지만, 언니는 남한에서의 생활에 전반적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처음 남한에 왔을 때 비행기와 전철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에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북한에서 20년 동안 살면서 비행기는 딱 두 번 봤는데, 그 비행기를 직접 타게 되는 날이 오다니. 언니는 라오스에서 남한으로 올 때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봤는데, 그때의 설렘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심지어 남한에서 사람들이 매일같이 이용하는 버스나 기차는 북한에서 한번밖에 타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남한에서 언니에게 언제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남한의 시설들이 북한보다 훨씬 발달한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에서 살다 온 사람들에게는 이 시설들이 낯설어서 처음부터 배우고, 또 적응해 나가야 합니다. 컴퓨터 같은 기계들은 정말 편리하고 좋은데, 정작 언니는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모르니까 처음에는 그런 상황이 너무 속상하고 안타까웠으며, 이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면 어떻게 살아가지?’라는 두려움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배우는 과정에서 물밀 듯 밀려오는 열등감과 남들보다 뒤처져 있다는 우울한 생각에 힘들었다고 합니다.

정말 재수 없어.

또 북한 출신의 사람들이 남한에서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차별인데, 언니는 신학대학에 다니는 만큼 주변에서 언니가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한 적은 없지만, 두리하나 국제학교에 다니는 한 아이한테 들은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 아이는 두리하나 국제학교에 오기 전 일반학교에 다녔는데, 탈북한 뒤 처음으로 다닌 학교였기 때문에 모든 것이 어색해 어려움이 많았지만, 같은 반 반장이 많이 챙겨주고 도와주어서 금방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항상 고마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화장실에서 우연히 그 친구가 다른 친구들과 얘기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 진짜 뭐 그런 애가 다 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줘야 한다니까 정말 재수 없어.”

이 말부터 그 뒤 이어지는 아주 심한 욕설까지, 바로 반장이 그 탈북 한 아이를 두고 한 얘기였습니다.

그런 얘기를 할 거라고 예상했던 친구였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겠지만 가장 의지했고 신망했던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었기 때문에 충격도 실망도 더욱 컸다고 합니다. 언니는 이렇게 남한 청소년들에게 앞뒤가 다른 점이 있다는 것에 우려하고 있고, 그들에게 북한 사람들도 남한 사람들이랑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합니다.

남한 사람들의 냉담한 태도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언니가 그 아이의 경험담을 듣고 정말 충격을 받은 것은 바로 왕따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 것입니다. 언니가 북한에서 학교에 다닐 때는 여러 명이 한 명을 따돌리는 일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굶주림 속에 허덕이느라 누굴 미워할 여유조차도 없었다고 합니다.

북한을 간단히 알아보자!

북한 학교에서는 방학마다 과제를 내 주는데, 여름방학 때는 호박씨나 해바라기씨 등으로 기름을 짜는 과제가 있습니다. 또 북한에는 집마다 난로를 사용하기 때문에 나무를 산에서 직접 해 와야 합니다. 그래서 겨울방학 때는 나무를 해오는 과제를 내 준다고 합니다. 과제가 너무 많아서 방학이 되어도 쉴 수가 없는데, 심지어 방학과제를 하지 않을 시에는 학교에 벌금까지 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바쁜 생활 때문에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도 책을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언니도 북한에서 20년 동안 책을 두 권 정도밖에 읽지 못했는데, 심지어 북한에서는 책을 읽으면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는 일 하느라 바쁜데 혼자 여유 부린다고 생각해 싫어한다고 합니다. 남한에서는 방학숙제로 책을 읽어오라고 하고 그마저도 귀찮다는 이유로 건너뛰기 일쑤인데, 북한에서는 방학숙제가 농사일이고 심지어 책도 마음대로 읽지 못하다니.... 북한 사람들의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언니와 북한의 학교 얘기를 하다 보니, 북한 사람들의 전반적인 생활에 대해 더 많은 부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북한에는 농촌 출신 노동자 출신 등 계급이 나누어져 있어, 특정 계급 이상이 되지 않는 이상, 하고 싶은 것을 할 수가 없습니다.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보는 시험이 매우 어려워 대부분 뇌물을 주고 들어가고, 혼자 공부를 할 수 있는 참고서나 문제집도 없어 일하면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또 농사일이나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자식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가업을 물려받아야 하고, 심지어 농촌자녀들은 대학에 아예 들어갈 수 없게 법으로 규정되었던 적도 있습니다. 나중에 그 법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농촌자녀가 돈으로 시험 보고 들어가고 돈 내고 다니는 대학을 갈 수 있는 경우는 드뭅니다. 언니는 농부의 딸이었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함부로 이동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대학에 들어간다든지 원하는 직업을 갖는다든지 하는 생각은 해 보지 못했습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이어도 농사일을 하지 않으면 감방, 소위 교화소라고 불리는 곳에 끌려가기 때문에 언니에게는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어린아이에게도 공부나 꿈에 대해 생각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집이 바다 근처에서 살면서 단 한 번도 바닷가에 가보지 못하는 국가, 남자는 17살부터 27살까지 10년을 의무적으로 군대에서 복무해야 하는 국가,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화를 집마다 모셔놓고, 훼손되었을 때 당한 가족몰살을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집에 불이 났을 때 초상화부터 구하다 목숨을 잃은 사람이 있는 국가,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국가. 예은 언니는 그런 국가 북한에서 20년 동안 살아야 했습니다.

물론 몹시 나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웃 간의 교류가 거의 없는 남한의 도시와 다르게, 언니는 명절에는 집집이 떡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고,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서 이야기 꽃을 피우는 문화를 가지고 있는 곳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남한에서 때때로 동네 친구들과 뛰어 놀던 기억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언니가 누릴 수 있는 권리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언니는 그런 삶이 너무 끔찍했고, 죽을 생각으로 탈북을 시도한 것입니다. 20148, 탈북에 성공해 중국으로 건너가 한 달, 또 라오스에서 한 달 동안 생활하다 같은 해 10, 결국 남한 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현재 남한에서 생활하며 언니는 신학을 계속 배우고 중국어도 배워, 중국으로 탈북 한 사람들을 위한 구출사역에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영어 실력을 함께 키워 미래에 미국이나 캐나다로 유학 가고 싶다는 꿈도 가지고 있습니다.

언니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그려진 모습은, 북한에서의 암담했던 생활보다 언니가 소망하고 꿈꾸는 미래에 가까웠습니다. 대화하며 언니와의 공통점을 여러 가지 찾을 수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교육에 관심이 많다는 것입니다. 언니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학교에서 조선역사, 국어, 수학 과학생물(과학과 생물 과목이 나누어져 있다고 합니다) 12가지 과목을 배웠는데, 그중 단 2가지 과목의 교과서밖에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또한 북한은 소학교 4, 중학교 6년의 과정이 있는데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탈북 한 사람들 대부분이 남한에서 영어를 배울 때 가장 어려움을 느낍니다.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 지원하는 북한 이탈 청소년만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 마련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남한에서의 생활 적응뿐 아니라 영어 교육에 초점을 두어, 북한 이탈 청소년들이 프로그램을 이수한 뒤에도 일반 학교에서 남한 학생들의 영어수업 진도를 따라가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도와야 합니다.

또 언니가 통일되면 가장 먼저 북한의 고아들을 교육하고 싶다고 얘기했듯이, 통일이 이루어지면 북한에 학생의 권리를 보상하는 학교를 만들어 아이들이 원하는 공부를 마음껏 하고 꿈을 키워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생존을 위해 일하기 바빴던 사람들이 자신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기 바빠졌을 때, 그때가 바로 언니가 고대하는 순간입니다.

성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 많이 벌어서 이름을 날리고 싶어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소박하게 자신의 가정을 꾸리며 살고 싶어 합니다. 언니의 성공은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언니는 북한에서 온 사람들도 열심히 살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합니다. 그런 언니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바라고, 또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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