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마당

    등록일 : 2017-07-07 오후 1:53:52  조회수 : 406
  2421 . [함께 그려 갈 세상을 꿈꾸며] 김나윤의 이지원, 박하진 님 인터뷰  
  등록자 : HAFS12人        파일 :

함께 그려 갈 세상을 꿈꾸며

이탈 주민들에 관해 관심을 두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된 단순한 호기심에서가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 2년간 북한 이탈청소년들을 위한 연합동아리 자선공연을 하면서도, 책이나 자료들을 통해서만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접해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직접 그들을 만나 살아있는 이야기를 듣고, 그 친구들이 겪는 고민과 괴로움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마음을 열고 다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저의 첫걸음이, 앞으로 우리가 함께 꿈꾸고 만들어 갈 세상으로 가는 첫걸음이 되리라 믿습니다.

첫 번째 만남

작고 마른 체구에 똘망똘망한 눈빛을 가진 귀여운 여동생 13살 이지원. 제가 만난 첫 북한 이탈 주민의 모습은 우리와 전혀 다를 게 없는 평범하고 가녀린 소녀였습니다. 두리하나 국제학교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생활하고 있는 지원이는 방학이라 늦잠을 자다 일어났다며 조금은 수줍은 듯한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시작했습니다. TV 뉴스에서 북한 소식을 접하며 평소 머릿속에 막연히 떠올렸던, 경직되고 어색해서 거리감이 느껴졌던 북한이탈주민의 모습에 대한 편견이 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사실 지원이는 북한 출신의 어머니와 한국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친구로, 그냥 똑같은 한국 사람이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 작은 몸에 새겨진 마음의 상처들을 하나씩 들을 수 있었습니다.

북한을 떠나온 엄마가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오는 힘든 과정에서 몸이 약해져 일하시면서 병원에서 오랫동안 치료를 받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결혼하여 지원이와 8살 된 동생을 갖게 되셨는데 이혼으로 양육과 생활을 병행하기 힘들어 두리하나 국제학교에 맡기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혼 후 힘들어하던 어머니는 지원이가 6살 때 캐나다로 건너가 4년 동안 지원 단체의 보호 속에서 지냈는데, 지원이는 그때를 제일 행복했던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불안하고 안정되지 않은 생활과 변화를 겪으며 13살 아직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지원이는 불안함을 긍정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저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구석이 있는 친구였습니다.

오히려 캐나다에서보다 한국에서 일반 학교에 다닐 때 친구들에게 북한이탈주민 자녀인 것을 숨기기 위해 더 조심해야 했고, 친구네 집을 놀러 갈 때마다 행복해 보이는 모습에 거리감을 느껴야 했다고 하였습니다. 학교 친구들이나 선생님에게 부모님이 북한 이탈 주민인 것을 알리고 싶지 않다며, 친구들이 일면 무시하거나 다르게 보고 멀리할 것 같다는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위에서 학교 친구들에게 상처받은 후에 두리하나 국제학교로 온 북한 이탈주민 친구들이 털어놓은 이야기를 듣고,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많이 보았다고 했습니다. 이미 우리와 다를 게 하나 없는 지원이 같은 친구가 왜 마음에 돌덩이같이 무거운 짐을 지고 보이지 않는 벽을 느껴야 하는 걸까? 남북을 가로지르는 답답한 벽이 우리들의 생각 속에도 깊게 자리 잡고 있던 것은 아닌지, 지원이를 보며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내 표정이 어두워 보였는지 지원이는 앞으로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자신의 꿈 얘기를 들려주며, 캐나다에서 배운 영어로 학교에 외국인 손님이 찾아 올 때마다 통역도 맡는다고 웃어주었습니다. 지금 바라는 것이 있느냐는 마지막 질문에, 지원이는 동생에게 라면도 끓여주고 돌봐줄 테니 엄마가 빨리 나아서 동생과 세 식구가 함께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게 소원이라고 답했고, 그 담담한 목소리가 오히려 더 가슴 아프게 남아있습니다.

북한이탈주민 1세대뿐만 아니라 2세대인 자녀들도 한국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냉소와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서 방황하며 꿈을 잃고 무기력해지는 청소년이 없도록 우리 개개인에 자리 잡은 편견을 버리고 그늘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두 번째 만남

작은 친구와 만남 뒤 큰 여운이 남아서일까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박하진 선생님을 만나 보았습니다. 수줍어하시는 말투와 달리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해주신 박하진 선생님은 36세의 여성으로, 두리하나 국제학교에서 중국어 교육을 담당하고 계십니다. 한국으로 오신지는 10년이 되었는데, 결혼해서 돌을 갓 넘긴 예쁜 딸이 있다며 환하게 웃으셨고, 그 환한 웃음을 찾기까지 험난한 길을 돌아오신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어렸을 때 부모님을 잃고 고아가 되었는데, 남겨진 3남매 중 동생은 보육원으로 보내졌고, 오빠는 가출해서 홀로 길을 떠돌며 지내는 노숙생활을 오랫동안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가장 힘든 것은 추위와 배고픔 이었고, 날마다 견디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아침에 눈을 뜨면 거리에서 굶주려 죽은 사람을 보는 일도 있었고, 배고픔에 지쳐 19세에 탈북을 권유하던 지인과 함께 중국으로 넘어가 8년을 중국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하루하루 배고픔을 견뎌야 하는 북한 주민들과 달리, 북한의 지도층이나 관리 계층은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으나 극히 일부에 국한되어 있고, 그 빈부의 격차가 커서 일반 주민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또 인터넷과 미디어 매체의 발달로 한국의 드라마나 뉴스 등을 몰래 시청하는 일도 많아져 탈북을 생각하는 북한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는 중국으로 넘어온지 얼마 되지 않아 북한에 잡혀 다시 북한으로 돌려보내졌을 때였는데, 다시 도망쳐 나오기까지 선생님은 말로는 할 수 없는 힘든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영화에나 나올 법한 장면들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기분이 들었고, 지금의 저와 비슷한 나이에 그런 엄청난 일들을 겪었을 어린 박하진 선생에게 경외심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힘든 환경에서 벗어나려는 어린 소녀의 절박한 몸부림과 끝없는 도전이, 지금 박하진 선생님의 환한 웃음을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힘들다고 엄마에게 투정 부렸던 작은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시험, 대학 진로, 이런 문제들이 삶과 죽음의 한계를 넘나드는 본질적인 인권 앞에서 얼마나 하찮고 사치스런 고민이었는지를 생각해봅니다. 박하진 선생님이 겪었던 일들이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겪는 괴로움과는 많이 다를 것이고 진심으로 공감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겠지만,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부딪쳐 이겨낸 용기에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함께 응원할 것이라 믿습니다. 목사님과의 인연으로 8년의 중국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온 후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외국어대학에 진학해 중국어 과를 졸업하고 신학을 공부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온 박하진 선생님이 새삼 존경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북한을 이탈하여 한국으로 오게 되면 한 달 동안 조사를 받고 3개월간 하나원이라는 곳에서 한국생활 전반에 대한 교육과 정착금을 지원받는다고 합니다. 교육비도 지원받을 수 있으니 북한 이탈 청소년들이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학업을 이어가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뜻을 밝히셨습니다. 북한을 벗어나 중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잘 곳과 먹을 것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북한을 떠나온 일을 후회한 적이 없었고, 신앙을 갖게 된 이후로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중국에서 태어난 탈북 자녀들이 한국으로 왔을 때 언어문제로 적응에 힘들어 하는 것을 보고, 두리하나 국제학교에서 중국어를 가르치기로 하셨다고 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며 힘들었던 일로 역시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편견의 시선을 꼽았습니다. 말투나 억양으로 북한 이탈 주민임을 알게 되면 면접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많고, 무시하는 태도로 대하거나 취업 후에도 차별적인 대우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중국에서 온 조선족 동포라고 얼버무린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북한이탈주민의 실수나 잘못이 언론에 보도될 때에는 여지없이 편협한 시선을 받아야 한다며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박하진 선생님이 북한 이탈 주민 청소년들을 지도하고 격려하며 진정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은 어쩌면 중국어가 아니라 본인이 그랬듯이 사회에 맞서서 당당할 수 있는 자신감과 용기일 것입니다. 그 친구들이 어떠한 사회적 불이익에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갈 수 있기를 바람일 것입니다.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과 북한 주민들이 더는 고통 받지 않기 바란다며, 우리가 어른이 되었을 때에는 통일된 한국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꿈을 꾸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을 뿐이라는 박하진 선생님은 자신의 딸이 사는 세상은 좀 더 좋은 세상이면 좋겠다는 말씀하시며, 다시 한 번 환하게 웃어 주셨습니다.

더 좋은 세상

선생님이 딸을 위해 만들어 주고 싶은 더 좋은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해야 할 것입니다 3만 명이 넘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생사의 고비를 넘으며 찾아온 곳에서 상처를 치유하며 각자의 꿈을 이뤄갈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 편견의 벽을 허무는 것은, 그들 위한 일일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좋은 세상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일 것입니다. 오늘도 TV에서는 북한 이탈 주민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 같은 한국인이라는 공익광고가 나옵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다른 존재임을 사회적으로 규정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어쩌면 무지와 연결되어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들을 알고 이해한다면 다름은 다양이라는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자연스럽게 어울려질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첫 번째 만남』 『두 번째 만남, 두 분과의 인터뷰를 통해 옆집 동생이나 사촌 언니 같은 친밀 감을 느낄 수 있었고, 그들의 아픔을 조금은 더 공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북한 이탈 주민들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며 친구입니다. 저는 마음의 벽을 허물고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세 번째, 네 번째 만남을 이어갈 것이며, 북한 이탈 주민을 위한 공익광고가 필요 없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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