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마당

    등록일 : 2014-06-17 오후 1:27:30  조회수 : 6844
  1624 . 탈북자들의 등대지기로 헌신하는 천기원 목사
  등록자 : 신앙세계        파일 :

탈북자의 구출을 돕고 있는 두리하나선교회는 북한이 괴뢰당국의 지원 자금을 받아 유인 납치행위를 일삼고 있다고 언급할 정도로 그 활약이 대단하다. 10여 년 전, 직접 부딪혀 탈북 루트를 개척해 나간 천기원 목사의 대담함이 약 천 명의 탈북자 구출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탈북자들과 함께 생사의 경계를 오갔던 천기원 목사. 그에게서 백전노장의 노력함이 엿보인다. 게다가 이제는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삶까지 알뜰히 보살피고 있다. 무엇보다 탈북청소년을 교육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탈북 아이들의 미소가 화사한 날 천기원 목사를 만났다._편집자 주

와글와글 합창단 한 목소리를 내다

지난 3 아시안리더십컨퍼런스에서 다른 어떤 순서보다 감동이 큰 공연이 있었다. 탈북 청소년으로 이루어진 와글와글 합창단의 공연이었다. 합창단의 공연은 음악적으로 뛰어난 성취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제각각의 성향이 뚜렷한 아이들이 하나의 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감동이 있는 무대였다. 탈북청소년들로 이루어졌다고 하나, 속사정을 보면 그렇게 뛰어나지도 않은 합창이 감동이 큰 공연이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와글와글 합창단에는 대체로 고아들이 많다. 북한에서 부모를 잃어버리거나 돌아가신 경우 그들은 국경을 오가는 꽃제비 신세가 된다. 그들은 측은히 여기는 선교사들에 의해 탈북 고아들은 한국으로 오게 된다. 여기에 탈북 이후 중국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있다. 그리고 부모를 따라 한국에 들어왔지만 부모와 함께 살 수 있는 환경이 안 될 때,두리하나국제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학교는 기숙사 생활을 뒷받침한다. 어렸을 때부터 세상의 어떤 아이들도 경험하지 못한 비참한 환경 속에 있었던 아이들은 자기들밖에 모른다. 더 정확히는 자기의 목숨밖에 모른다. 그런 아이들이기에 한 번 싸우기 시작하면 죽기 살기로 싸운다. 그래서 와글와글 합창단을 만들었다. 합창단에서 주로 교육하는 것은 음악적 기교가 아니라 서로 화합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처음 학교에 온 아이들이 10마디를 하면 9마디가 욕이었어요. 뿐만 아니라 개성이 강하고 자기주장이 강했어요. 생활에 안정이 되지 않아 미래에 대한 소망도 없었던 터라 살기 위해 끼리끼리 뭉치고 분열하는 것이 앞섰어요. 그렇다보니 다른 이에 대한 배려는 꿈꿀 수도 없죠. 합창단을 통해서 서로 배려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을 가르치고 싶었어요.”

처음 합창단을 구성하고 아이들에게 합창을 시켰을 때는 말도 아니었다고. 천기원 목사는 도대체 들어줄 수도 없는 합창이라 많이 난감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소리 내는 것에만 열중한 나머지 다른 아이들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합창단원 스스로 불협화음을 인지하고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모습. 천기원 목사는 예배 때, 설교를 마치고 합창단 연습 때 녹음한 것을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엉망진창인 노래를 들으며, 문제를 인식한 아이들이 그 이후로 자신의 목소리보다 다른 이의 목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고.

두리하나국제학교에서 무르익는 통일세대

천기원 목사는 처음부터 탈북자들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던 것은 아니었다. 누구보다 탈북 과정을 소상히 알고 있던 그이기에, 생사의 경계를 뚫고 온 그들이 하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북한을 탈출하는 그 의지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자신이 구출한 탈북자들 중에는 남한이 북한보다 더 살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었고, 많은 이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비참한 삶을 살거나 다른 나라로 떠나기도 했다.

전혀 다른 환경에 있던 나무를 뽑아 심으면 그것이 잘 자랄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더 조심스럽게 가꾸고 물도 주어야 하는데, 저는 나무를 뽑아다가 여기에 내팽개친 것이나 다름없구나 생각했어요. 죄책감이 들었어요. 중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구나 생각했죠.”

그제야 탈북자들에게 교육이 절실하구나 생각했다. 교육대상은 탈북청소년, 그중에서도 가난한 아이들과 고아가 주를 이뤘다. 2009년에 설립된 두리하나 국제학교는 초등과정, 중등과정, 고등과정의 3단계 교육과정을 기본으로 예 체능과 야간 방과 후 학교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검정고시 발표에서 시험을 본 모든 학생들이 합격을 했다고.

하나님께서 이집트의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모세를 통해 광야로 인도하잖아요. 여호수아와 갈렙을 빼고는 모두 광야에서 죽죠. 그 다음세대가 들어가게 되는데, 탈북자의 교육도 비슷해요. 이미 주체사상과 공산주의에 익숙한 어른들, 청년들은 교육이 쉽지가 않아요. 아이들에 집중하게 된 이유가 여기 있어요. 이 아이들이 통일한국 시대의 리더가 되어 다시 북한 땅을 밟게 될 거예요.”

천기원 목사는 두리하나 국제학교를 통해 배출된 아이들이 통일한국 시대의 중요한 리더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어느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고난을 아이들에게 허락하신 만큼 이후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이 이 아이들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이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아이들을 인도하시는 것으로 볼 때, 하나님의 때는 멀지 않았음을 말이다. 탈북 청소년, 이 아이들이 통일한국 시대를 열어젖힐 것이라는 기대가 오늘의 두리하나 국제학교를 만들었다.

스승의 날에 편지를 받았어요. 처음 여기 왔을 때는 상처만 많았지 꿈은 없었다는 거예요. 이전에는 공부하는 것이 싫었는데, 지금은 꿈이 생기고 삶의 목적이 생기니 공부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어요. 저는 공부하라고 이야기하지 않아요. 공부하지 말라고 해도 자기들이 알아서 열심히 해요.”

탈북 선교 사역으로의 부르심

어렸을 적부터 시골교회에서 살다시피 했다는 천기원 목사. 마침 목사님의 아들과 동갑이었던 터라 교회는 그에게 또 다른 집이었다. 교회에 자주 있다 보니 목사님의 생활이 어떤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시골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님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가난하던지, 목사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자신의 이런 바람과는 달리 어머니는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서원기도를 하셨다.

목회의 삶은 순교자의 삶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신이 없었어요. 어머니는 항상 제 머리에 손을 얹고 주의 종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셨어요. 그렇지만 싫었어요. 저를 잘 알지도 못하는 목사님들이 기도해 주시면 항상 저더러 목회를 하라고 했어요. 오히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더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마흔이 될 때까지도 주변의 목회 권유는 끊이질 않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가 손에 쥐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 둘 없어지기 시작했다. 우선은 사업이 무너져 경제적으로 힘들어졌다. 거기에 가정 문제가 겹치면서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신의 계획과 뜻을 돌리기 위한 하나님의 징계가 아니었나 싶다. 위기를 맞자 자연스레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들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신학, 게다가 주변 환경과 권유에 떠밀려 하게 된 신학이 달가울 리 없었다. 여전히 그는 사업 구상에 여념이 없었다. 중국이 시장을 개방하고 한창 개발에 열을 올릴 199512월 그 또한 중국으로 들어갔다. 신학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내심 하고 있었던 때였다. 연길 공항에서 중국 도문으로 가는 길은 북한을 바라보며 가는 길이다. 이제까지 북한에 특별한 마음이 없던 그도, 눈에 닿을 거리에 북한이 보이자 뭉클한 마음이 올라왔다. 강 건너편으로 소달구지를 몰고 가는 북한주민을 바라보는 천기원 목사의 심정은 복잡 미묘했다.

두만강 국경 근처에 주체탑이 있었어요. 사진을 찍으려고 내려갔는데, 강물에 빠져 죽은 북한 주민을 보았어요. 누구도 시체를 수습하지 않은 채 버려져 있었어요. 조금 더 가서 훈춘에 도착했어요. 사람들이 많았는데 쪼그만 아이들이 구걸을 하고 있었어요. 주머니에 있던 돈을 주었는데, 갑자기 공안이 나타나 아이들을 때리는 거예요. 그중에 한 아이는 맞아서 귀가 찢어졌어요. 꽃제비, 북한의 고아들이었어요. 바로 옆에서는 여자의 비명이 들렸어요. 북한 여자가 인신매매 당하는 광경이었어요. 중국에서 북한 주민들은 사람대접을 받고 있지 않았어요. 그 날 교회를 찾아가 기도하는 중에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는 1996년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19997월 재차 중국에 방문했을 때, 다시 한 번 전에 겪었던 일들, 누구도 관심이 없는 탈북자의 시체와 돈을 구걸하는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때리는 공안들, 돈 한두 푼에 팔려가는 북한 여성들이 그의 뇌리에 다시금 박혔다. 탈북자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부르심이 탈북자 선교에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야고보서 127)

탈북자들의 대부, 천기원 목사

무심코 했던 말이 공교롭게도 탈북자 선교 사역의 첫 발걸음이 되었다. 너무 무모한 나머지 너무나 미안한 최악의 경로, 구조자로서 최악의 상황에 우겨 넣은 것 같아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만 그만큼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할 첫 경험은 부모님이 보고 싶다는 탈북자의 요청으로 시작되었다.

탈북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임에서 한 탈북청년을 만났어요. 중국에 어머니가 있는데, 어머니의 신변이 항상 걱정이 되어 몸이 안 좋았어요. 그때 제가 그 청년에게 방학 때, 어머니를 구하러 중국에 같이 가자고 했어요. 저는 생각 없이 했던 말인데, 이 친구는 간직하고 있었던 거예요.”

20017, 우여곡절 끝에 중국에 가게 되었다. 우선은 캄보디아로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경로는 중국~베트남~캄보디아였다. 중국에서 지도를 사고 가장 짧은 거리를 계산했다. 그리고 차를 타고 국경으로 향했다. 국경을 건너기 위해 여러 번 답사를 나갔다. 경험도 지식도 없는 그에게는 까마득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일단 자신 있게 말했기에 하루 이틀은 아무 말 없이 기다려 주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초짜라는 것이 들통 나고 말았다. 그래도 이들의 구출을 돕고 싶었다. 어떻게든 국경을 넘기 위해 직접 국경 근처를 탐색했고, 결국은 그들을 한국으로 인도할 수 있었다. 국경을 넘기 위해 올랐던 첫 번째 담이 공안 건물의 담이었고, 그 길로 올랐던 산이 누구도 오르지 않는 독사가 서식하는 산이었다거나, 캄보디아 국경에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들어갔던 곳이 지뢰밭이었다든가, 어떤 방식으로든 죽음이 곁에 있었다. 탈북자들과 함께 그는 혈로를 뚫고 한국으로 왔다.

이후 탈북 루트는 조금 더 쉽고 안전한 방향으로 개설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목숨을 보장받는다든가 안전을 보장받지는 못했다. 2001년 십여 명의 탈북자를 구출하다가 결국 공안에 붙잡히게 되었다. 탈북 루트는 중국~몽골이었다.

“2002년에 이미 중국에서 추방당했어요. 그때 5년간 중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정해졌죠. 그런데 20065월에 최초로 미국에 탈북자를 망명시켰어요. 탈북자의 편지를 많이 받아, 중국에 들어가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어요. 그래서 비자 신청을 했는데 비자가 나왔어요. 중국 당국의 행정 오류였던 것이죠. 중국에서 그때 이미 추방 기간이 5년 연장이 되어 있었어요. 이후로 네 번을 중국에 더 들어가서 탈북자들을 구출했어요. 200612월에 또 다시 공안에 잡히기는 했지만, 탈북자 미국 망명의 길을 여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생각해요.”

두리하나라는 홈페이지 개설이 두리하나선교회의 시작이었다. 중국으로 탈출한 북한 주민들이 지금도 이 홈페이지를 통해 구출 요청을 해 오고 있다. 그는 지금 비록 발이 묶여서 혈로를 함께 하지 못하지만, 그와 동역하는 선교사들이 있기에 지금 이 시간에도 생명과 자유를 찾는 자들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 이후 중국 내에서의 이동이 더욱 힘들어졌지만, 그는 앞으로도 탈북자들에게 생명의 빛을 건네는 손이 될 것이다. 베드로가 자신을 부인할 것을 알면서도, 가룟유다가 자신을 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사랑하신’(13:1) 예수님의 사랑으로 탈북자들을 안을 것이라 그는 다짐한다. <김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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