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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스
    등록일 : 2009-04-01 오후 1:43:16  조회수 : 5262
  8 . [월간조선] 검사와 '죄수 딸'의 결혼
  등록자 : 조선일보        파일 :

千璂元
1956년 경북 경산 출생.
백석기독신학대학. 同 대학원졸업.
1999년 탈북자 지원단체인 사단법인 두리하나 설립. 2001년 12월 탈북자들을 돕다가 중국에서 체포되어 7개월간 복역. 2006년 10월 두리하나교회 창립. 현재까지 700여 명의 탈북자들의 한국입국 지원.

검사와 '죄수 딸'의 결혼

식량을 구해오겠다며 중국으로 떠난 지 5년이 지나도록 생사를 모르는 남편을 찾아 영철, 영순이를 데리고 무작정 두만강을 건넌 아이 엄마, 임신한 줄도 모르고 중국으로 탈북(脫北)하여 숨어 지내다 만삭의 몸으로 해산할 곳이 없어 '천국의 국경'을 넘던 성민이 부부, 남편은 굶어 죽고 두 살 된 아이를 등에 업고 중국으로 탈북 한 혜화 모녀, 12명 누구 할 것 없이 북한에서 굶주림과 중국에서 죄인 아닌 죄인으로 쫓기고 팔려 다니던 굴곡진 삶을 살아 왔던 우리 동포들이었다. 나는 이들에게 자유와 희망을 찾아 주기 위해 눈보라 휘날리는 내몽골 국경 사막을 헤매다 2001년 12월 20일 새벽 일행과 함께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한 달간 중국 공안의 조사가 끝난 후 나는 2002년 1월 29일 검찰로 넘겨졌다. 나를 조사한 검사들은 탈북자들을 데리고 국경을 넘어간 이유와 배후를 되풀이해서 캐물었다. 선교사가 인권과 자유를 찾아 나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진대 거기에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나는 “탈북자를 보호하고 도와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이 시킨 일”이라고 대답했다.

무신론자(無神論者)인 중국 검사들에게 그런 대답은 먹혀 들지 않았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비협조적이면 중국에서는 조사만 몇 년이라도 더 할 수 있다. 1주일 후에 다시 올 테니 잘 생각해보고 답변하라”고 했다. 6개월에 걸친 검찰 조사는 그렇게 시작했다.

You are a good man"

지루했던 검찰 조사는 미국 의회에 나를 위한 석방결의안이 상정되고 그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구속 7개월 만에 끝이 났다. 검찰 조사 마지막 날, 세 명의 검사가 들어와 조서(調書)에 지문을 찍었다. 동료 검사 2명이 서류를 들고 나가자 20대 후반의 젊은 검사가 정색을 하고 질문했다.

“탈북자를 돕는 진짜 동기가 뭐요?”

잠시 당황스러웠으나, 나는 같은 대답을 되풀이했다.

“하나님이 시켜서...”

그러자 그는 갑자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You are a good man”(당신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며 내 어깨를 두드리고 밖으로 나갔다. 독방으로 돌아 온 후 나는 하루 종일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You are a good man”이라니, 무슨 뜻일까? 최하 징역 12년에서 무기(無期)징역까지 받을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놓더니 갑자기 “good man”이라니...

일주일 후 중국 검사들이 나를 다시 조사실로 불러냈다. 그들은 내게서 압수했던 카메라, 휴대전화, 내비게이션 등 소지품 목록을 내밀며 “범죄에 이용한 증거품 목록이다. 당신 소지품이 맞으면 사인하라”고 했다.

소지품 목록에 사인을 받은 후 동료 검사들이 나가자 그 젊은 검사는 내게 다시 물었다.

“성경 어디에 탈북자를 도우라는 내용이 있냐?”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 성경에는 '탈북자를 도우라'는 구절은 없다. 다만 출애굽기 22장 21~22절에 '너는 이방(異邦)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이었음이니라.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다. 탈북자들은 식량 때문에 중국으로 넘어 왔다가 불법 월경자(越境者) 신분이 되어 어린 딸들이 부모가 보는 앞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나이 많은 남자들에게 팔려가고, 남편이 보는 앞에서 아내가 팔려간다.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사는 모습을 멀리서 쳐다보며 가슴으로 통곡하는 남편이 나그네가 아니겠는가? 이들을 압제하지 말며, 학대하지 말며, 고아와 과부를 해롭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 바로 그 말씀이다.”

그 젊은 검사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다시 “You are a good man”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신을 이해하기는 하지만 현역 검사로서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악수를 청한 후 'good man'이라는 말을 남기고 나갔다.

재판 날 단상 정면에 세 명의 판사가 앉고 우측에 국선 변호사, 좌측에 검사가 앉았다. 젊은 검사와 친구이자 동기인 여자 검사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국선(國選) 변호사는 이름과 나이 등 사실관계만 질문했을 뿐, 아침부터 저녁까지 재판 내내 한마디도 변호해주지 않았다. 내게 'good man'이라고 말했던 젊은 검사는 뒤에서 재판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고, 여자 검사가 날카로운 질문 공세로 나를 궁지로 몰았다.

법적으로는 24시간 안에 판결을 내리게 되어 있었지만, 판결은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변호사와 법조 브로커들은 거액의 뇌물을 요구했다.

보름이 지나서야 판결이 내려졌다. 8만 위안의 벌금형에 강제 추방.

2002년 8월 5일, 드디어 감옥 문을 나왔다. 하지만 비자 기간이 만료됐기 때문에 서류수속을 하는 동안 검사의 감시 아래 호텔에 감금되어 보름간을 지내야 했다. 나를 기소했던 검사들 가운데 두 사람은 “항소(抗訴)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다만 그 젊은 검사는 호텔에 찾아와 내게 여러 가지 편의를 베풀어 주었다. 그는 제이슨이라는 자기 영어 이름을 말해 주었다.

8월 22일 중국에서 추방되는 날 아침에도 그는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동안 베풀어 준 호의에 감사하며 “기회가 되면 한국에 한번 찾아오라”며 전화번호를 적어 줬다. 그리고 차가운 수갑에 묶여 추방당했다.

교회에 나간 중국 검사

중국에서의 아픈 기억이 차츰 지워져 갈 무렵인 그 해 12월 중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니하오”

내게 호의를 베풀어 주었던 젊은 검사였다. 놀랍고 반가웠다. “웬일이냐?”고 묻자, 그는 “기회가 되면 한국에 한번 놀러 오라고 하지 않았느냐? 초대를 해 주면 가겠다.”고 했다. 열흘 후 아내와 함께 제이슨을 마중하기 위해 자동차를 몰고 공항으로 달려가는 내내 기분이 참으로 묘했다.

탈북자들을 북송시키고, 선교사를 추방하고, 탈북자를 도왔다는 죄목으로 나를 감옥에 보냈던 중국 검사가 제 발로 나를 찾아오다니...

자동차를 타고 공항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한국에 며칠 머물 것이냐?”고 물어보았다. 열흘 정도 지내다 돌아가겠단다. “내일은 목사들이 가장 바쁜 주일이다. 혼자 친구를 만나든지, 집에서 쉬고 있으면 월요일부터 관광을 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다음날 아침 “교회에 갔다 오겠다”면서 집을 나서는데, 제이슨이 따라 나서는 것이 아닌가? 사회주의 국가 중국의 현역 검사가 교회에 가겠다는 말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교회가 어떤 곳인 줄 모르냐? 만약 한국에서 교회에 나갔던 것이 알려지면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며 만류했다. 그는 “괜찮다”며 따라 나섰다.

제이슨과 함께 교회를 가는 동안 어제 공항에서 우리 집으로 올 때보다 더 기분이 복잡 미묘했다. “공산당 현역 검사가 교회를 와? 그것도 감옥에서 사형까지 시키겠다며 나를 협박하며 힘들게 했던 장본인이...”

제이슨은 한국 말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한 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설교를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머리 속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다. 나는 그의 옆구리를 찌르며 물어보았다.

“너 여기까지 왔으니, 예수님 믿을래?”

그는 망설임 없이 “OK"라고 대답했다. 너무 싱거웠다. '설마 진짜 그럴 리야. 여기까지 왔으니 예의상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배가 끝날 무렵 다시 그에게 물어봤다.

“예수님을 믿으려면, 하나님 앞에서 서약하는 예식이 있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느냐?”

이번에도 그는 “OK"라고 답했다.

예배를 마치고 떠나는 교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김진흥 두레교회 담임목사님에게 말했다.

“중국 검사가 예수 믿겠다는데, 안수 기도 좀 해 주세요.”

김진흥 목사님은 놀라면서 “강대상(講臺上)으로 데리고 오라”고 했다. 제이슨에게 “‘예수 믿겠다고 서약하겠다’고 했으니, 강대상으로 올라가 무릎 끊고 목사님께 안수기도 받으라.”고 했다. 제이슨은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는지 신발을 신은 채 뚜벅뚜벅 강대상으로 올라가더니 김진홍 목사님 의자에 앉았다. 교인들이 웃으며 “의자 밑에 무릎을 꿇고 앉으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철퍼덕 앉았다.

김진홍 목사님의 안수를 받은 후 제이슨은 영어 성경과 신앙 서적을 선물로 받았다. 열흘 후 중국으로 돌아가는 그에게 나는 인사를 겸해 부탁했다.

“중국에 돌아가면 꼭 교회 다녀요.”

제이슨은 기다렸다는 듯이 “OK"라고 대답한 후, 중국으로 돌아갔다.

사돈과의 상견례. 오른쪽 두 번째가 필자이고 뒷줄 오른쪽이 제이슨

제이슨, 사위가 되다

그에 대한 기억이 차츰 잊혀져 갈 이듬해 4월 중순, 제이슨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너무 반가웠다. “교회는 잘 나가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현역 검사가 어떻게 교회에 나가겠는가?”라고 대답했다.

‘그럼 그렇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크게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제이슨은 “부탁이 있어 전화했다. 뉴질랜드로 유학을 가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뉴질랜드에 가면 교회도 마음대로 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뒤에 한 말은 미안해서 하는 소리인 줄은 알면서도, 마침 뉴질랜드에 지인(知人)이 있기에 그렇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날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제이슨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이슨, 뉴질랜드보다 한국으로 유학 오면 어때? 공부하기는 여기가 더 좋을 거야.”

그는 “한국으로 갈 수만 있다면 당연히 한국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 해 7월 제이슨은 고려대 유학생으로 한국에 들어와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다. 한 달 후 베이징 북경(北京)에서 유학 중인 딸 한나가 방학을 맞아 귀국했다. 중국말이 통하는 두 사람은 시내를 함께 구경 다니며 가까이 지냈다. 딸이 다시 중국으로 돌아 간 다음날 제이슨이 느닷없이 “한나랑 친구하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내가 흔쾌히 “그러라”고 했는데도 머뭇머뭇하는 것이 다른 뜻이 있는 듯 했다.

“다른 할 말이 더 있냐?”

“한나와 결혼하면 안 되겠습니까?”

내가 정색을 하며 “그건 안 된다”고 하자 그는 당황스러워 하며 물었다.

“아버지, 한나도 자기를 좋아하고 나도 한나를 무척 사랑하는데 왜 결혼은 안 됩니까?”

“당신이 중국 사람이라서, 나를 괴롭힌 검사라서, 내 딸이랑 결혼 못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딸이랑 결혼할 자격이 없어서 안 된다.”

제이슨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풀이 죽어서 “어떤 부분이 한나랑 결혼할 자격이 안 되는 것이냐”고 물었다.

“한나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목사될 사람에게 시집 보내겠다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당신은 검사기 때문에 안 된다.”

“나와 한나가 서로 사랑하는데 방법이 없겠습니까?”

“방법은 당신이 찾아봐라.”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내가 신학(神學)을 하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럼 신학을 하면 당연히 자격이 있지”

제이슨은 이틀을 고민하더니 “고려대 대학원을 졸업한 후 연세대 신학대학에 입학하겠다.”고 약속했다.

2006년 9월 30일, 제이슨과 한나는 부천 송내중앙교회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김종순목사님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김준곤 목사님이 ‘검사와 죄수 딸의 결혼’이란 축사를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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