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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스
    등록일 : 2009-04-01 오후 1:41:56  조회수 : 5555
  7 . 천기원 목사와 함께한 유럽 북한난민 사역보고서(6)  
  등록자 : 두리하나        파일 :

11) 꿈의 나라 네덜란드, 2008년 10월 27일 (월)

아침 9 시 출발, 꿈의 나라 네덜란드로 출발. 우리 여정의 마지막 목적지이기에 꿈의 나라로 가는 양 마음이 부푼다. 헤이그 까지는 284km, 2시간 39분 예정. 독일의 경계를 벗어 나기 전 고속도로를 빠져 나가 작은 마을에 차를 세웠다. 손바닥만한 시골의 시장통에서 발견한 구멍가게 같은 카페. 시장 끼가 느껴지는 늦은 아침, 기다림 따라 들이킨 커피 향만으로도 마음이 향기로워진다. 망중한, 따끈한 커피 한 잔이 참 맛있다. 피로가 한 풀 꺽인다.

편리하고 유익하다. 지금은 전시회가 없기에 30유로로 숙박할 수 있는 것도 참 감사하다. 참고로 전시회가 열릴 때는 60유로로 오른단다.

작은 마을, 시장통의 평생 잊지 못할 향가득 따끈한 커피 한 잔

컵 라면 세 개에 뜨거운 물을 받아서 주차장으로 왔다. 인적 드문 이곳에서 배추김치 가대기와 함께 뜨거운 김을 풀풀 날리며 먹던 컵 라면의 추억은 우리만 아는 초라한 비밀이다. 그렇게 아침 요기를 하고 달리고 달려 간다. 한 참 후, 독일과는 사뭇 다른 고속도로의 광경이 펼쳐진다. 네덜란드의 고속도로는 주변의 시야를 열어 놓았다. 푸른 초원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휙휙 지나치는 양이나 가축, 축사를 붙들어 보지만 이내 놓쳐버린다. 멀찍이 초원 뒤편에 하늘을 찌를 듯이 군집해 있는 나무들도 채 따라 오지를 못한다.

하하하!!! 제가 웃음이 나옵니다. 주차장 앞에서의 컵라면과 배추 김치

네덜란드의 환영 인사는 색다르다. 이름하여 자연 변주곡. 비가 오다가, 햇살이 비치다가, 시야가 막히다가, 소나기가 내리기도 한다. 오락 가락하는 얄궂은 날씨마저도 전에 느껴 보지 못하던 새로운 경험이어서 신선하고 감사할 뿐이다. 고마운 네비게이션의 도움으로 이 창기 목사님 댁에 도착. 이 창기 목사님은 말로만 듣던 풍차마을로 우리를 안내 하신다. 어릴 적 동화 책에서나 보던 실체 앞에 서니 꿈만 같은 행복감이 넘친다.

천기원목사, 이창기목사, 오빈선교사(왼쪽부터)

튤립민박에 도착하니 또 하루가 저문다. 덴마크에서 온 이 상희 자매가 이미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그 자매는 오래 전부터 북한선교를 위하여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다가 두리하나를 발견했단다. 한국의 두리하나 선교회에 전화를 하게 되었고 네덜란드 방문 계획이 있다고 하니 귀한 시간을 만들어서 여기까지 날아 온 것이다.

저녁을 먹은 후, 잠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의 고향은 경상북도 점촌이다. 영국 런던의 'OM'선교회에서 사역을 하다가 남편 Runenils 를 만나서 결혼을 했단다. 지금은 남편의 고향에서 12년째 살고 있으며 여행 업에 종사하고 있단다. 남편은 37 살이며 국제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단다. 남편의 학업이 끝나면 사역의 길로 갈 계획이어서 천 목사님을 만나서 북한난민, 북한선교에 대하여 이야기를 꼭 나누고 싶었단다. 그 먼 길을 마다 않고 날아 온 자매의 모습이 참 신선하고 귀하게만 느껴진다. 앞으로의 삶, 북한선교에 섬김과 복음을 심는 거룩한 씨앗이기를 축복한다. 참, 2박 3일의 숙박비를 상희 자매가 모두 계산한 것도 참 감사하기만 하다. 주님께서 친히 갚아주시기를 축복한다.

12) 두리하나 망명 사역자와의 만남, 2008년 10월 28일 (화)

헤이그에서 암스테르담까지는 58.7km, 소요시간 47분 예상이다. 송 선생님은 난민숙소에서의 인터뷰를 다 마치고 암스테르담 중앙 역으로 오시겠단다. 그의 숙소에서 그곳으로 기차를 타고 오는데도 약 1시간이 걸린단다.

우리는 일단 암스테르담에 가서 반 고흐 박물관을 관람하기로 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매표소에서, 출입구에서 장사진을 치고 있다. 이와 반면에 고흐에 관한 자료들을 찾아 읽어 보면 볼 수록 맘이 무척 아프다. 인생의 고뇌를 혼자 안고 혼자 몸부림치다가 결국 37살 나이에 자살을 했다는 그 이유가 내게는 무척 크게 다가 온다.

그의 아버지는 네덜란드 변두리 마을의 목사였으며, 한 때, 고흐는 가난한 탄광 노동자들의 전도사였으며 광부들의 시위를 도왔다는 이유로 파직을 당했다. 그런 그가 프랑스의 파리 가까운 작은 마을에서 결국 자살을 했다는 것을 나는 이해도 용납도 할 수 없기에 더 가슴이 아프다. 인생은 죽을만한 원인이 분명히 있지만 살만한 원인도 있다. 극단, 그 길로 가기 이전에 친구를, 전문가를, 주님을 끝까지 붙드는 신앙이기를 축복한다.

송선생님과의 접선은 좀 까다로웠다. 빨간 벽돌과 뾰족 지붕이 앙증스럽게 다닥다닥 붙어 건축된 암스테르담의 차 길은 다른 나라보다 비좁다는 느낌이 우선 들고, 도시 전체가 미로 같은 운하로 사방 팔방으로 찰랑거려 꼭 바다 위에 떠 있는 것만 같다.

익숙하지 않은 도로 표지판, 얽히고 ?힌 트램(땅 위 전철과) 도 낯선 방문객의 핸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이런 까다로움을 가로질러 달려 간 중앙역, 중앙역은 엄청 크다. 나오는 출구 인지, 들어가는 입구인지 수 십 개의 똑 같은 문들이 정말 나를 당황하게 한다. 어느 트램 정류장을 약속 장소로 정하고 간신히 상봉을 하였고 식당에서 반가운 인사와 맛있는 점심, 그리고는 헤이그의 민박집으로 차 머리를 돌렸다. 그래도 암스테르담 역시 아름답다, 참 아름답다는 말은 남기고 쉽다.

헤이그로 다시 돌아 가는 길, 날씨가 변화 무쌍하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다. 꼼짝없이 갇혀버린 검은 구름 속, 쏟아지다 못해 퍼 붓는 장대 빗줄기, 마치 반 고흐가 죽기 이틀 전 그렸다는? 까마귀 나는 보리밭’ 에 들어 있는 것만 같다.  폭풍우 치는 어두운 하늘, 겉잡을 수 없는 보리밭의 몸부림과 험한 사이 길......,

아름다운 풍차를 가리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다.

까마귀 떼는 날지 않지만 집어 삼킬 것 같은 암흑의 하늘과 억수 같은 비, 보리밭은 아니지만 시야가 막혀버린 초원, 거치고 좁은 사이 길은 아니지만 시각장애인처럼 더듬거리며 가야 하는 고속도로. 하지만 전혀 어렵지 않다. 믿음으로 앞만 보고 갈 수 있음이 감사할 뿐이다.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간다고 했던가 ! 온 전신을 집중하여 달려 가는 믿음이 감사할 뿐이다.

아득한 저 끝에 손바닥 만한 빛이 구름을 찢어내며 손짓을 한다. 주님은 우리를 늘 빛으로 오라고 하신다. 어둠에 갇혀 있지 말고 어둠에서 나오라고 하신다. 그 음성을 듣고 빛으로 끈덕지게 달려 가는 길. 결국 우리는 어둠의 거대장막을 통과하고 맑음의 나라에 온 것이다. 두고 온 곳, 숨가쁘게 빠져 나온 그곳은 여전히 암흑에 잠겨 있다. 이런 진경을 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할 뿐이다.  

튤립 민박집, 식사 후 송 선생님과의 만남.

우리는 지금 세 번째 만나는 것이다. 맨 처음 만남은 2000년 8 월 15일 이다. 졸업 논문을 쓰기 위하여 두리하나 선교회와 함께 중국 비젼 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 때 송 선생님은 처소에 숨겨놓고 성경학습을 하고 있는 약 30 여명의 북한난민들을 데리고 공원으로 나오셨다. 하필이면 왜 이번 네덜란드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 온 후 컴퓨터 위에 그 많은 포켓 앨범 중의 하나가 뒹굴고 있었는지, 무심코 넘기다가 보니 그 때의 사진이 있었고 새삼 단체로 찍은 사진 속에서 송 선생님의 사진을 보고 또 보고 있는 중이다.

외 할머니를 통하여 신앙을 받은 송 선생님은 아직까지 독신이다

두 번째 만남은 2008년 3월 초순으로 기억이 된다. 약 3 년 전에 중국에서 만났던 북한난민 형제자매들이 태국에서 약 2 년 정도를 머무르고 있었다. 어느 날, 하나님은 나에게 그곳으로 가야 될 무척 큰 사랑을 강건적으로 부어 주셨다. 현실을 핑계로 결코 그것을 거부할 수가 없는 그 무엇이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결국 나는 태국으로 갔었고, 그 곳에서 송 선생님과 깜짝 상봉을 하였다. 하나님께서 천국의 국경에 나오는 성룡이를 만날 수 있도록, 송선생님을 어떻게 사용하셨는지 송선생님은 나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신다. 하나님의 신비로운 손길을 말이다.

세 번째 만남은 오늘, 망명지인 네덜란드 헤이그이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서로에 대하여 안면만 있을 뿐이지,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음과 사랑만 있을 뿐이지 너무나도 아는 것이 적다.

송 선생님은 독신이다. 나보다 연배가 2 살 많으시다. 외 할머니를 통하여 신앙을 받았다. 외할머니는 이미 일제시대 때에 신앙을 가지고 계셨고 중국으로 피난을 가셨다. 송선생의 어머니는 외할머니로부터 신앙교육을 받았고 송선생은 중국이 개방된 후, 1984년도부터 어머니와 함께 교회에 발을 딛게 되었다. 그 후, 1996년도에 한국의 선교단체가 운영하는 성경학습반에 들어가서 성경을 체계적으로 배우게 된다. 1997년, 그 즈음에 많은 탈북자들이 성경학습반으로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김 요엘 선교사가 추방당하고, 1999년도부터 두리하나와 선이 닿기 시작했다. 그때 약 52 명 정도의 북한 난민들을 보호하며 성경학습을 하였다. 2000년 1월 14일, 또 다시 3박 4일 동안의 찬양집회를 비밀리에 개최하기 위하여 삼자교회를 방문했었는데 그 교회 집사가 고발을 해 버린 것이다. 이때 처음으로 붙잡힌 송선생은 심각한 구타를 당했다. 관리자인 허선생의 거처를 대라는 것이다. 그들이 즉석에서 압수한 명단을 대며 이게 허 아무개냐고 묻는 말에 최 아무개라고 둘러 댔다가 더 큰 구타를 당했다.

수술흔적이 채 아물지 않은 배를 맞고는 10여분 정도 억하고는 숨을 쉬지 못한 상태가 되었다고 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 중국공안은 얼굴을 때렸다. 그때 몸에 지니고 있던 집세 영수증으로 인하여 처소가 추적 당하고 급기야 7명이 잡혀 갔다.

성경 등은 다 압수 당하고. 배집사의 도움으로 15일 구류 후 석방되었다. 이 후에도 성경학습반과 처소, 그리고 자유를 찾아 한국으로 보내는 일은 계속 되었다. 2000년 3월, 사평 사람이 한기총의 지원금을 받아 8명이 탈출을 시도하다가 6 명은 잡히고 2 명만 몽골에 도착했다. 2000년 10월, 전기요금을 계량하러 온 사람이 사람냄새를 맡고 파룬궁 인줄 알고 신고를 해버렸다. 40 여명의 공안들이 일시에 들이 닥쳤고 처소에 있던 5 명은 잡혀가고, 산에 기도하러 간 사람들은 무사했었다.

그곳에서 발각된 환갑잔치사진은 부인할 수 없는 증거품이 되었고, 잡혀 갔던 사람들은 심각한 고문을 당하면서 결국 자백을 해버리고 말았다. 이때부터 송선생은 검거대상자로 수배령이 내려졌지만 시내 외곽에서 3개의 처소를 운영했다. 2003년 9월 3일, 도피생활 끝에 이사를 하다가 정주시 안전국에 2번째로 잡히게 되었다. 그 당시 수배대상인 하 권능은 한국에 있는 누군가와 전화 중에 여기 상황이 무척 긴박하다. 나를 어서 데려가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 전화를 도청한 중국 공안의 상부는 4일안으로 하 권능을 잡아라는 명령을 하부에 내린다. 지시를 받은 공안은 송선생을 이용하여 하 권능을 잡을 계획이었다. 송선생은 하 권능이 잘 간다는 공원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서 주기도문을 외우며 이틀 동안 공원을 배회하고 있었다. 물론 하 권능이 여기에 자주 온다는 것은 송선생이 꾸며 낸 것이다. 이틀 동안 벤치에 앉아 있던 경찰들은 지겨워하며 남아 있는 이틀 동안 너 혼자 찾아라며 경계를 늦추는 사이, 감금 4 개월만에 도망을 나왔다. 정주로, 심양으로, 청도로 가서 탈북자들과 숨어 살다가 더 이상은 중국 땅에서 살 수 없어서 2006 년 11월 북한난민들과 함께 두리하나의 안내로 태국으로 탈출을 하였다. 거기서 근 2 년을 기다린 끝에 2008년 8월 20일, 네덜란드에 난민자격으로 입국했다.

송선생님을 만나면 이름없는 들풀이, 들꽃이 생각난다. 한 송이가 아니라 자연스레 어울려 삶의 풍파를 온 몸으로 받아 들이는 알프스 고원 위의 수수하게 미소 짓는 군락지의 야생초들, 야생화를 보는 것같다. 쉽게 눈에 뜨이지 않고 애써 찾지 않으면 만나지 못하는 그 이름없는 수고가 하늘에서는 별처럼 빛나리라.

그 날밤, 송선생님은 집에 가면서 읽어 보라며 예쁜 편지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한 눈에 사양하고 싶었지만 때론 거절하지 말고 받아야 할 가슴 아픈 사랑이 있기에 못내 감사하며 받았다. 구구절절 감사와 감사로 적힌 그 편지에는 깊은 뜻이 담겨있어서 사랑이다. 처음에는 글자를 잘못 알고 잘못 썼나 싶었는데, 분명 아니다. 오빈, 내 닉네임이다. 그런데 편지에는 오별로 적혀 있다. 오스트리아의 마음이 가난한 자 가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별로 명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마음을 읽고 참 많이 부끄러운 것이 사실이다.

오빈이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별로 명명하고 있다.

또 하나, 난민촌에서 받은 일주일분의 생활비를 과부의 두 렙돈처럼 통째로 나에게 부어준 것이 무척 뜨겁기만 하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파온다. 망명지에서 고작 갖고 있어봐야 몸에 걸친 옷뿐, 쌓아 놓은 것이 아무 것도 없을 것인데, 입만 먹고 살 비용만 나올 것인데 그 비용을 나 뿐만 아니라 또 다른 가까운 사람에게도 나누어 준 것이다. 주님께서 그의 삶을 땅의 것, 하늘의 것으로 채워 가시기를 축복한다.  

 13) 헤이그이준열사교회, 작별, 2008년 10월 29일 (수)

오늘은 모두가 작별하는 날이다. 천 목사님은 한국으로, 상희 자매님은 덴마크로, 나는 오스트리아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오스트리아 빈(Wien)까지는 1168km 이지만, 약간 우회해서 271km 를 더 달릴 생각이다. 갈 길이 멀고 바쁘기에 마음이 분주해진다. 그래서 어제 의논한 것이 날이 밝으면 아침 먹고 나 혼자 먼저 떠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모두 나를 부러운 듯이 바라보고 있다. 일단은 같이 가겠단다. 바닷가로! 나 혼자 어서 바다를 보고는 독일을 경유, 빈으로 가서 약속 날짜에 맞추어 자동차를 반납하려고 했는데.......,

넓은 바다와 하늘을 향해 마음껏 날개를 펴고 자유를 누리시길..

드디어 출발, 바다로 간다. 확실히 초행길에 네비게이션만한 효자는 없는 것 같다. 네덜란드의 바다에 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 비릿한 갯내음이 신선하게 온 몸과 맘을 파고 든다. 후련하고 시원하다. 바다, 백사장을 밟고 서 있다는 것만으로 몸과 마음이 맑아 진다. 자연에 들면 하나님을 더 가까이 만난 것 같은 이 기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비록 내 고향 남도바다의 한려수도 같은 정겨움은 없지만 여기 온 것만으로, 여기 선 것만으로 한 건 올린 것이다.

헤이그 이준기념교회로 갔다. 목적지를 근 200m를 남겨두고서는 길이 막혔다. 공사 중이다. 가까운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이 사람, 저 사람 물어보니 대답이 다 제 각각이다. 일단 확률이 많은 곳으로 사람들을 보내 놓고 한 할아버지에게 다시 물어 보았더니, 그 할아버지는 자기 자동차를 따라 오란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나에게 재차 삼차 자기 자동차를 따라 오라는 친절을 보이신다. 도착하니 내가 갖고 있는 주소와 이름이 꼭 같은 양로원이다.

그 당시 이준 열사의 기사를 배경으로

이 난감함.

다시 허겁지겁 돌고 돌아 같은 장소로 와 보니 송선생이 보인다. 교회는 바로 코 앞에 있다. 송선생의 말이 또한 걸작이다. 여기는 자기가 와 본 곳이고, 이 교회를 다니고 있다고^^.

이준기념교회의 이 창기 목사님과 이 은숙 사모님께서 먼저 도착한 일행들에게 교회를 설명하고 계신다. 교회는 아담하며 예배당 안의 구조가 독특하다. 천장 위, 사각형으로 자연채광이 가능하게 해 놓았다. 이준열사는 감리교 교인이었으며 순국 10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 감리교에서 기념교회를 봉헌한 것이다. 교회 안에는 한국전 참전 네덜란드 군인들의 사진과 그 당시의 한국사람들의 사진이 걸려 있어서 무척 인상적이다.

한국전 참전 네덜란드 군인들의 사진과 그 당시의 한국사람들의 사진

천 목사님과 이 창기 목사님 역시 초면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 인줄 알았는데 최근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송선생님의 정착과 교회생활을 고민하다가 인터넷을 통하여 이 교회를 알게 되었고 연락하게 되었단다. 시간은 정말 잘 간다. 벌써 11시가 넘어 간다. 이제 더 이상 떠나는 것을 미룰 수가 없다. 카페 같은 교회의 휴게실에서 간식과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내 모든 임무를 마감한다. 살가운 작별. 10박 11일, 함께 체험한 하나님의 크신 은혜, 하나님의 사람들의 큰 사랑을 안고 그들만 둔 채 길을 재촉한다.

천주교 성당을 개조하여 만든 아름답고 따뜻한 예배실 공간

14) 집으로 가는 길.

기분이 참 좋다. 입술을 타고 찬송이 흐른다.

집으로 가자, 집으로 가자. 이런 눈물 흘리지 않는 곳.
집으로 가자. 집으로 가자. 내 아버지 기다리시는 그곳에
안녕 친구여, 곰곰이 생각해 봐. 그대는 지금 자유로운지
안녕 친구여, 감추지 않아도 돼. 애써 웃는 모습 안 보여도 돼
구원 받은 몸이라 안심하고 있었나 끊임 없이 생기는 어둔 죄 감춰둔 채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셨는데 친구 넌 그 뜻을 진정으로 아는가

집으로 가자, 집으로 가자. 어둔 죄로 아파 하지 않는 곳.
집으로 가자, 집으로 가자. 내 아버지 기다리시는 그곳에
안녕 친구여 생각해 보았는가 정말로 천국 갈 수 있는지
안녕 친구여 세상 떠나 갈 때에 칭찬하는 하나님 뵐 수 있는지
마음 속 깊은 곳에 하나님이 계신가
희미한 예감으론 평안을 얻지 못해
예수님 알기 위해 얼마나 고민했나
아직도 이세상을 그렇게 기대하나
집으로 가자, 집으로 가자..........................,

306km를 쏜살 같이 달려서 헤네프에 도착했다. 지난번 전도용 소책자를 구매하면서 잘못 계산한 200유로를 드리고 따끈한 차 한잔을 마시고 바로 일어 섰다. 다음 목적지 245km를 쉴 사이도 없이 달리고 달렸는데도 시간은 줄여지지 않고 어둠이 일시에 밀려 온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내일을 생각해서 최소한 뮌헨 가까운 곳 까지는 가야 되는데......,

김동욱 목사님은 지난번 처음 만났을 때 만약 우리가 다름슈타트에 오게 되면 로렐라이라는 곳을 안내해 주겠다는 친절을 이미 계산하셨다. 하지만 일정이 바뀌는 바람에 미처 연락을 드리지 못하고 네덜란드까지 가 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 혼자 내려 오면서 꼭 한 번 뵙고 싶었고, 작은 것이지만 한국에서 이번에 가지고 온 ?쥐치포’ 를 나누고 싶어서였다. 쥐치포라는 말이 나왔으니 잠깐 한마디 기록해 놓고 싶다. 이번 여행에서 만나게 되는 분들에게 선물을 하고 싶어서 삼천포의 누님 공장에서 쥐포를 사서 택배로 두리하나 사무실로 부쳤다. 천 목사님은 이 곳 빈(Wien)으로 옮기는 임무를 무리 없이 해 주셨다. 그런데 목사님이 가지고 오신 짐들을 제대로 정리할 겨를도 없이 먼 여정을 시작 한 것이다. 포장도 못했거니와 짧은 순간에 만날 사람들을 계산하며 쥐치포를 챙겼는데 모자라는 것이다. 넓게 생각하면 다섯 봉지만 더 가져 왔으면 싶고, 좁게 잡으면 두 봉지만이라도 더 가져 왔으면 하는 후회가 뼈저리게 쏙쏙 파고 들었다. 두 봉지 만이라도 더 넣어 왔다면, 우리 송 선생님, 그리고 덴마크에서 온 상희 자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나 혼자 미안하고 또 죄송할 뿐이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 역시 간식거리로 쥐치포 봉지를 뜯어서 먹어 보지를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나는 바다 사람이나 마찬가지이다. 생선이나 쥐치포는 먹어 본 입이라 언제 먹어도 질리지도 않고 무척 좋아한다. 그런 나에게 8 박 9 일 간의 장거리 자동차 여행은 당장이라도 한 봉지 ?- 뜯어서 뒷 좌석도 돌리고 나 역시 잘근잘근 달큰, 고소하게 씹어 먹고 싶은 충동이 참으로 컸었다. 하지만 그냥 참았다. 귀하다면 귀한 것, 받는 이가 혹시 나만큼 좋아하는 것일까 봐, 별 것 아니다면 아닌 것을 그렇게 오래 품고 있다가 나누려 가는 것이다. 마음과 정성으로 이번 일을 배려해 준 그분들에게.

바움홀더 옆 하임바흐, 김 목사님 댁에 들어서니 5시 30분 정도 인데도 어둡다. 윤 경선 사모님, 그리고 ?내 아들의 향취’ 성찬이를 처음 만나는데도 낯설지가 않다. 식탁에 앉으니 몸이 좀 이상 한 것 같다. 온 몸이 굳어지고 맥이 빠지며 얼굴의 살이 떨리는 것 같다. 화끈한 생선매운탕, 새빨간 알타리 김치, 토실토실한 숙주 나물, 샛노란 호박 죽, 그리고 갖가지 반찬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약속이나 한 듯 준비를 해 두셨다. 한 술, 한 술 밥을 뜨니 약처럼 몸이 회복이 된다. 내 몸이 살아 나는 것 같다.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한지, 주님께서 이때를 위하여 목사님과의 첫 만남에서 3박 4일 동안 같은 방을 사용하게 하셨을까? 염치불구하고 하루 밤 묵어 갈 수 있는 환경과 배려까지....., 밤이 늦도록 거실에 앉아? 천국의 국경을 넘다’를 보며 북한난민과 북한선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 집에도 없는 긴 이불을 푹 덮고 포근하고 행복한 잠을 잤다.

뒷날 아침, 빵으로 아침을 맛있게 먹고, 빵 도시락을 두 어 개 쌌다. 식탁에서 봉투를 하나 내미신다. 거절하고 거절해도 아니란다. 하나님의 은혜라며 목사님도 엊그제 갑자기 받은 것이란다. 목사님의 생활 역시 어려울 것을 알기에 미어지는 감사로 봉투를 받았다.

잠깐 차고로 오란다. 10킬로 짜리 쌀 3 포대, 케찹 2개, 땅콩버터크림 2개, 라면박스를 실어 주신다. 거절도 못하는 염치로 그 사랑을 몽땅 차에다 실었다. 참고로 김 동욱 목사님은 미군과 결혼 한 한국부인들을 위한 교회를 담임하신다. 경우에 따라, 그들은 더 많은 주님의 사랑이 필요하단다. 대부분의 생활품을 미군부대에서 구매하실 수 있는 특혜?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선물은 우리 아이들에게 참 좋은 선물이 되었다. 나는 늘 아이들의 생각에 못 미친다. 특히 막내 주본이의 요구에는....., 어쩌다가 내가 먼 곳에 갔다가 집에 돌아 가면, 주본이는 ,아빠, 선물 사 왔어?’라고 묻는다. 매 번 머쓱해 졌는데도 절약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아이의 눈 높이를 까 먹고 마는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밤 늦게 초인종을 누르고 집으로 들어 가니, 그 질문이다. 그래, 아빠 선물 가지고 왔어. 독일에 계시는 목사님이 너희들 주라고 주셨어. 주본이도 그랬지만 큰 아이들도 그 선물을 보고 참 행복해 했다. 목사님들의 사랑이 우리를 쌀 부자로 만들어 버려서 두고두고 감사 할 뿐이다. 미군부대에서 사 오신 케찹과 땅콩버터 노란 쌀은 김동욱 목사님, 파란 쌀은 이 창배 목사님으로부터, 김 동욱 목사님으로부터 온 라면, 아침 9시 30분경, 언뜻 보고 떠나는 하임바흐의 산골짜기 마을은 정말 아름답다.

언제 다시 한 번 오게 될지 모르겠다. 158km, 다름슈타트, 정말 열심히 달렸다. 잠깐 이 창배 목사님과 노 현정 사모님을 만나 얼굴 도장만 찍고, 마지막 남은 쥐치포를 전달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의 모든 만남을 주선해 주신 것이 참으로 감사하다.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 임을 나는 알고 있다. 배웅하러 나오신 목사님은 대뜸 자기의 자동차 트렁크에서 5킬로 쌀 2 봉지를 꺼내 주신다. 잠깐 당황이 되었지만 아무런 저항?도 없이 웃으면서 감사하다며 그 쌀을 받아 아쉬운 작별을 한다.

하하하, 함께 하는 모든 일정이 다 끝났다. 이제 부지런히 730km 를 달려 빈에 도착 한 후, 마사키 아빠에게 자동차를 돌려 주면 되는 것이다. 1km, 또 1km가 줄어 들 때마다 마음이 무척 즐거워 진다. 무한 질주, 독일의 고속도로에서는 특별한 속도 제한이 없는 한 그것이 가능하다. 무한 질주, 주위의 경치도 볼 수 없고, 잡 생각도 가질 수 가 없다. 오로지 앞 만 보고 정신 바짝 차려서 달려 가야 한다. 내 삶에서도 때로는 무한질주의 긴장이 필요할 때가 있다. 전심전력하여 일을 해야 할 경우도 생긴다. 그 때는 쉼도, 휴식도, 여유도 그 어떤 잡 생각도 가질 수가 없다. 오로지 그 일에만 매달려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무한질주만의 인생이 아니기를 축복한다.

쉼, 그것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온 귀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땅거미가 진다. 노을 빛이 든다. 휴게소에 잠깐 차를 세워 미리 준비한 보온병의 뜨거운 물을 컵 라면에 부었다. 차가운 바람도 상쾌하고 언제 올지 모를 독일의 산야도 제목 없는 감동이다.

생각해 보라. 하얀 눈을 딛고 있는 짙은 단풍의 낯선 그림을! 후루룩, 후루룩 컵 라면을 먹기가 바쁘게 집으로 달려 가는 길....., 독일을 넘어 오스트리아로 오자 도로사정이 약간 틀리는 것 같다. 고속 도로의 폭이 좁은 것 같고 차들도 독일과는 달리 조심스레 속도를 맞추어 달린다. 최고 허용 속도가 130km이다. 어둠 속에서 혼자 가는 길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집중력이 떨어지고 무거워 진다. 이제 완전한 밤이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고, 잠시라도 시선을 놓칠 수가 없다. 최고 속도로 달리고 또 달리고......, 그렇게 얼마나 더 달렸을까? 온 몸이 정말 무거워진다. 내 체력과 정신의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 온 몸의 기력이 다 새어 나간 듯 하다.

하나님, 제가 살아서 집에 갈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이 새삼 떠 오른다. 아무런 일 없이 집으로 갈 줄을 기도하고 믿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남의 자동차를 빌려 온 탓에 날짜를 맞추기 위하여 달리는 이 어둠의 길이 악몽처럼 버겁게 엄습하지만 혼자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기도하며 걷어 낸다. 주님은 힘이 넘칠 때나 쇠약 할 때나 늘 함께 계시며, 요청할 때 역시 뿌리치지 않고 함께 하신다. 그 은혜가 감사하다. 마지막 집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주님께서 나를 붙들고 계심을 나는 알고 느끼고 누리고 있다.

그렇게 재촉하여 온 길, 집에 오니 밤 8시이다. 짐을 부리고 차 주인에게 전화하니 내일 9시까지 자동차를 돌려 달란다. 감사로 시작하여 감사로 마친 모든 여정이 끝났다. 나는 모든 여정을 끝내고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다.

도착해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앓았지만 이제는 워드 작업이나 일상 생활을 하기에 불편함이 없는 정상적인 몸이 되었다. 내가 생각해도 다른 사람보다는 허약체질인 것 같다.

지나온 길을 더듬으면서 주님께 하듯 맘 다하여 우리를 대접한 그 황송한 손길들이 자꾸만 떠 오른다.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들을 통하여 표현한 사랑 앞에서 벅찬 감동이다. 우리가 지나가면서 신세진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개인적으로 독일의 바움홀더 옆 하임바흐의 김동욱 목사님 가족을 또한 잊지 못할 것이다.

혼자서 집으로 가는 길, 온 몸과 마음이 긴 여정에 밀려 고장이 날 찰나에 하루 밤의 재 충전으로 회복시켜 주시고 또 생각지도 못한 큰 사랑을 주신 것을! 유럽 4개국, 오스트리아,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주님이 지으신 자연의 감동을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게 하심도 잊지 못할 것이다.

또 잊지 못할 것은 북한난민과 북한의 이야기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며, 심령을 열고 기도하며, 말씀에 의지하여 협력하겠다고 결의하는 성도들의 모습이다. 그들의 그 결단이 지속적인 행동으로 이어진 열매이기를, 그래서 주님 나라에서 빛나기를 축복한다. 마음의 소원을 받으시고, 계획하게 하시고, 보게 하시고, 누리게 하시며, 북한난민과 북한선교의 겨자씨를 심게 하시며 앞으로 열매 맺게 하실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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