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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스
    등록일 : 2009-06-17 오후 4:12:14  조회수 : 350
  5 . 북한인권에 대한 노무현의 변명
  등록자 : 독립신문        파일 :


No, 5
이름:독립신문
북한인권에 대한 노무현의 변명  

워싱턴포스트 보도, 4개월전 탈북자 이씨의 생생한 증언

워싱턴 포스트는 최근 보도에서 탈북자 이모씨 스토리를 장문으로 다루면서 한국정부가 북한인권에 대해 눈감고 있는 현실을 고발했다.

- 노무현 대통령이 17일 청남대에서 여야 대표들과의 만찬 회동에 앞서 미니 골프장에서 김종필 자민련 총재(오른쪽)와 이원종 충북지사(왼쪽)가 지켜보는 가운데 티샷을 한 뒤 피니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대행을 포함한 여야 대표들과 라운딩을 할 계획이었으나 박 대행이 골프는 사양하고 만찬에만 참석, 이원종 지사가 대신 참여했다.

22살 때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나갔다가 중국공안에 의해 북한 수용소로 보내졋다가 죽기 직전 수용소에서 버려져 한 무역업자에 의해 극적으로 서울로 탈북한 28세 여성의 수용소 경험기와 북한관련 인권운동가들과 가진 다양한 인터뷰에서 워싱턴 포스트는 북한이 생지옥임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또 워싱턴 포스트는 유엔이 북한인권과 관련 규탄결의안을 채택할 때 한국정부와 인권변호사 출신인 노무현이 이 결의안에 불참한 사실을 꼬집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소수의 인권을 위해 김정일 정권과 갈등을 벌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차라리 대화를 통해 북한을 개방하는 것이 좋다"라는 말을 한 것으로 기사는 전하고 있다.

북한 동포중 소수가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다는 대통령의 인식이 안타까운 뿐이다. 북한 인구 2천만중 일부 간부를 빼고는 거의 모든 동포가 인권압제와 독재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텐데 어떻게 '소수의 인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정말 심각한 상황인식이다. 혹시 통역사으이 실수일수도 있지만 대통령의 인식이 이와 같다면 향후 남북대화나 남북관계도 상당히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한진 기자
themaninthestreettoday@hotmail.com


다음은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기사 전문이다.

이씨의 죄는 배고팠다는 것이었다.  수년간의 보잘 것 없는 배급량으로 연명하던 22살의 곱슬머리 처녀 이씨는 먹을 것을 찾기 위해 1997년에 시골 가족의 집을 떠나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갔다.  그녀는 잡혔고 수갑을 찬 채 북한의 포로 수용소로 되돌려 보내졌다.  그곳은 잔인의 세계였다.

그녀는 기진맥진할 때까지 일했고 공사장에서 무거운 벽돌들을 진 채 맨발로 뛰어다녀야 했다.  매일 그녀가 받은 음식은 국물 뿐인 수프와 양배추, 그리고 썩은 옥수수였다.

도망은 불가능했다.  "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라고 이씨는 말했다.  이씨는 지금 28살이고 도망쳐 나와 4개월 전에 서울로 왔다. 그녀는 맞고 굶고 공포에 시달렸다.  "수용소 포로들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정말로 없습니다. 이들은 감정없는 기계입니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지난달 처음으로 북한의 인권 문제를 규탄했다.  이것은 인권운동가들이 수년간 요구했던 것이다.

위원회는 북한의 상황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표했다.  이것은 고문, 공개처형, 정치적 사형, 포로 수용소, 빈약한 음식을 포함한다.

이번의 의결에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학대에 대하여 강한 태도를 보인 것이 일부분 작용했다. 그 전에 미국과 다른 나라들은 효과가 없을 거라며 다루기 힘든 나라인 북한에게 인권문제를 꺼내기를 꺼렸었다. 

그러나 한국과 인권변호사인 노무현 대통령은 결의에 불참했고 이것은 인권운동가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무서워서 말 못하고 있는 것을 외국이 말하고 있다는 것에 한국은 부끄러워 해야 할 것이다" 라고 기독교 원조 단체에서 일하는 천기원씨는 말했다. 그는 북한 동포들이 북한에서 도망치는 것을 돕다가 중국에서 감옥에 갇혔었다.

인권운동가들은 북한의 5개의 대규모 수용소에 약 20만명의 포로들이 있을 걸로 추정한다.  이들 중에는 이씨처럼 도망가려다가 잡힌 사람도 있고 정치범으로 잡혀있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범들에게는 수용소에서 죽을 확률이 높다.

미국의 노선 변화는 3월에 진 커크패트릭 전 유엔 미국 대사를 유엔 인권위원회의장으로 임명한 것과 같은 때이다.  커크패트릭 의장은 곧바로 북한을 "지구상의 지옥" 이라고 불렀고 새 외무부 인권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북한 정권이 강제로 낙태시키며 수용소에서 아이들을 죽이고, 납치, 생화학 무기들을 포로들한테 실험한다고 주장했다.

매년 회의를 갖는 유엔 인권위원회는 인권을 유린하는 나라들에 국제적 관심을 맞춘다.  이 위원회는 감독관과 조사관을 보낼 수 있지만 회의에서 북한이 고문, 종교적 배척, 무분별한 억류, 강제적 실종, 음식을 먹을 권리에 관하여 조사관들에게 협조하지 않았다는 것을 주의했고 협조해줄 것을 재촉했다. 또 내년에도 북한 문제를 의제에 넣기로 결정했다.

북한은 유엔 결의안을 거부했다. 북한의 유엔 대사는 이 결의안이 "거짓으로 가득" 하다고 했고 북한의 관영통신사는 이 결의안이 "바다를 빗자루로 쓸려고 하는 것처럼 바보같다" 라고 말했다.

몇몇 인권운동가들은 이 결의안이 북한정권에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결의안 채택의 선전 효과마저 이라크전쟁 뉴스와 북한 핵사태에 묻혀버렸다.

인권운동가 김상훈씨는 "이건 이빨 빠진 호랑이와 같다" 라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는 북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중국으로 도망가는 것을 도와주었다.  "우리는 왜 핵무기를 조사하듯 국제 조사단을 보내자고 요구하지 않는 건가?"

"정권이 바뀌지 않는 이상, 인권은 별로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라고 천씨는 말했다.  그러나 인권 유린에 스포트라이트를 맞추는 것이 "약간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북한 사람들은 체면을 매우 중요시한다.  그들은 자존심이 매우 강하다"  잡힌 망명자들의 공개처형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면서 공개처형을 중지한 거 같다고 그는 말했다.

인권운동가들은 한국정부로부터 현재보다 더 많이 기대했었다며 특히 한국의 입장에 비판적이었다. 

"이것은 한국 역사의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라며 망명자 지원단체인 도움의 손길의 대표 팀 피터스는 말했다.  "사람들은 한국 정부에 분개해야 한다.  인권문제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김대중과 인권 변호사 (노무현) 둘 다 인권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아이러니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에 워싱턴 포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입장을 변호했다.

"김정일 정권에게 소수의 사람들의 인권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대화를 통해서 북한정권을 개방하게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라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난 궁극적으로 이것이 북한사람들을 전체적으로 볼 때 더 많이 보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나는 북한의 인권상황과 국제사회의 여론의 압력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인권문제를 제기하면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그것은 북한을 "개방" 하거나 평화를 가져오는데 장애물이 될 것이다."

탈북자 이씨는 자신의 북한에 수용되어 있을 때 그곳의 인권 상황의 공포를 보았다.  이 젊은 여인은 북한에 있는 자신의 어머니와 세 형제가 심각한 위험에 처할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성명을 다 밝힐 수는 없다.  서울의 인권 운동단체 사무실에 앉아서 짓는 그녀의 아름다운 웃음은 포로수용소 생활의 기억 때문에 곧 울음으로 바뀐다.

그녀는 매일 밤 160 명의 여자들이 수용소에서 머리를 숙이고 줄을 서 있었다고 말했다.  감시자는 이들 중 열심히 일하지 않은 사람들을 채찍질 했고 이들의 머리를 벽에 세차게 박았다고 말했다.  50명의 여자들은 자그마한 방에 들어가 앉은 채로 자야 했다.

"잠을 자고 나면 다음날 아침 옆에 있던 사람은 죽어 몸이 차가워져 있었어요" 라고 그녀는 말했다.  "나이든 여자들은 곧바로 죽었습니다."  그녀는 배가 너무 고팠던 한 포로가 한 죽은 여자의 귀의 반을 물어뜯어 나중에 먹으려고 주머니에 넣었다고 말했다.

도망치려다 잡힌 두 자매는 다른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하여 끌려나왔다. 그들은 무거운 통나무가 떨어질 때까지 들고 있다가 깔렸다고 이씨는 말했다. 다른 포로들은 뼈를 부러뜨리기 위하여 이들 자매들의 손들을 짓밟도록 명령받았다. 끝에는 이들 두 자매는 굶어 죽을 때까지 벽에 매여 있었다.


"일주일 후에 그들의 몸둥이는 사라졌습니다.  죽은거죠." 라고 이씨는 말했다.


이씨는 포로수용소에서 몸이 너무 허약해져서 죽으라고 집으로 보내졌다. 대신에 무역업자가 그녀를 등에 업고 중국으로 데려갔고 거기서 그녀는 건강을 회복했다. 한 기독교 인권운동가가 그녀에게 위조된 문서를 주었고 중국정부가 탈출한 북한주민들을 북한으로 되돌려 보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중국 동부에서 4년간 불법으로 살았다. 

그녀는 결국 북한주민들을 밀항시키는 "지하철도" 에 참가했다.  그녀는 몽골리아를 거쳐 12월에 한국에 도착했다.  안전하다는 것이 확인됐을때 그녀는 만약 북한으로 보내질 경우에 먹으려고 했던 쥐약을 버렸다.

이씨는 한국에서 육체적 편안을 찾았으나 다른 망명자들처럼 안전한 한국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외로움을 느꼈다. 한국의 재교육 캠프에서 2달을 보낸 후 한국정부는 아파트와 함께 매달 돈을 주었다.  그녀는 비서로서 필요한 기술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고 액센트와 공산주의 교육이 그녀를 다른 사람하고 다르게 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까를 생각하고 있다.

"전 한국에만 오면 모든 것이 행복해 질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전 어디를 가야할지도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밀수입 경로를 통해서 북한에 있는 자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에게 음식을 살 수 있도록 돈을 보내고 있다.  "만약 우리 가족이 다친다면 나의 모든 희망이 사라질 겁니다" 라고 그녀는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 가끔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잊어버립니다" 라고 그녀는 말했다. "이제 저는 포로수용소의 생활이 얼마나 역겨운 것인지 알았습니다. 거기서 저는 감각이 마비되어 있었어요.  이것을 잊으려는 것은 인간적인 거죠." 


By Doug Struck
Washington Post Foreign Service
Saturday, May 3, 2003; Page A20


SEOUL -- Lee's crime was that she was hungry. After years of meager rations in North Korea, the 22-year-old woman with curly hair left her peasant family's home and slipped across the border into China in 1997, hoping to find something to eat. She was caught and sent back, handcuffed, to a North Korean prison camp -- a world of cruelty.

She was worked to exhaustion, forced to run in her bare feet as she carried heavy bricks at a construction site. Her food was a bowl of watery soup every day with cabbage and a few rotten corn kernels.

There was no escape. "I didn't feel anything," said Lee, now 28 and safe after an escape that brought her to Seoul four months ago. Beaten, starved and assaulted by horrors, "you just don't think about anything. You really have no fear of death. At that point, you're just a machine with no emotion."

The U.N. Commission on Human Rights condemned North Korea's human rights record for the first time last month, answering years of demands by activists that the world confront the abuses.

The commission expressed "deep concern" about conditions in the country, including torture, public executions, political executions, use of political prison camps and selective provision of food.

The vote is a response in part to the harsher tone adopted by the Bush administration in dealing with North Korean abuses. Previously, the United States and other countries had been reluctant to push the human rights issue with the prickly North Korean government, arguing that it would have little effect.

But to the dismay of activists, South Korea and its new president, Roh Moo Hyun, a human rights lawyer, abstained from voting.

"South Korea should be ashamed that foreign countries are saying what we are afraid to say on behalf of fellow Koreans," said Chun Ki Won, a South Korean Christian aid worker who has been jailed in China for his work helping North Koreans escape.

Human rights activists estimate there are about 200,000 prisoners in at least five large North Korean camps, some confined for trying to escape like Lee, others for political offenses that make it likely they will die in prison.

The change in the U.S. line coincides with the appointment in March of Jeane Kirkpatrick, the former U.S. ambassador to the United Nations, as head of the U.S. delegation to the Geneva-based U.N. commission. Kirkpatrick promptly labeled North Korea as "hell on earth" and presented a new State Department human rights report, alleging that the North Korean government conducts forced abortions, murders of babies in prisons, kidnappings, and experiments using chemical and biological weapons on inmates.

The U.N. Commission on Human Rights, which meets annually, focuses international attention on human rights violators. The commission can send monitors and investigators, but at its meeting in Geneva it noted that North Korea has not cooperated with U.N. investigators dealing with torture, religious intolerance, arbitrary detention, involuntary disappearances and the right to food. It urged the North Korean government to do so. It also elected to put North Korea on its agenda again next year.

North Korea rejected the U.N. resolution, its U.N. ambassador saying it was "full of fabrications" and the official news agency saying it was "as foolish as trying to sweep the sea with a broom."

Some activists here said the resolution will have little effect on the government. Even the publicity value of its passage was lost in news coverage of the Iraqi war and the nuclear crisis with North Korea.

"It's a tiger without teeth," complained Kim Sang Hun, a human rights worker who has helped organize desperate escapes for North Koreans from China. "Why don't we demand to send international inspectors in there, like we do for nuclear weapons?"

"Human rights won't improve significantly until there is a regime change," said Chun. But he said spotlighting the human rights abuses "may help a little bit. North Koreans put a great importance on 'face.' They are very proud." Publicity about public executions of defectors who were caught seemed to stop the killings -- in public, at least, he said.

Rights activists were especially critical of South Korea's position, saying they expected more from South Korea's new government.

"It will go down as a stain on South Korea's history," said Tim Peters, director of Helping Hands Korea, which assists defectors. "There should be outrage toward the government here. Nothing can top the irony of a human rights Nobel laureate [former president Kim Dae Jung], followed by a human rights lawyer, and neither of them raising the issue of human rights."

Roh, in a recent interview with The Washington Post, defended his position.

"Rather than confronting the Kim Jong Il regime over human rights of a small number of people, I think it is better for us to open up the regime through dialogue," he said. "I think this will ultimately bring broader protection of human rights for North Korean people as a whole.

"As in Iraq, I don't think the North Korean human rights conditions can be changed by pressure from international public opinion," Roh added. "If I bring up the human rights [issue], it will not help improve human rights conditions in North Korea. Rather, it will be an obstacle to bringing an 'opening up' or peace in North Korea."

Lee saw the horror of those human rights conditions during her imprisonment in North Korea. The young woman cannot give her full name; her mother and three siblings still in North Korea would be in grave danger. Sitting in an activist's office in Seoul, her pretty smile dissolves into tears at recalling her months in prison.

Each night, she said, the 160 women in the camp lined up, heads bowed, as a guard whipped those who had not worked hard enough and slammed the heads of others against the wall. Fifty women were packed into a tiny room, forced to sleep while sitting.

"You go to sleep, and the next morning the person next to you is cold, dead," she said. "The older women would die right away." She said that a fellow prisoner, desperate with hunger, bit off half the ear of a woman who had died, and put it in her pocket to eat later.

Two sisters who tried to escape were caught and brought back to the camp to serve as a lesson. Lee said they were forced to lift a heavy log until it fell, crushing them. Other prisoners were ordered to stomp on the sisters' hands to break their bones. Finally the two women were strapped to a wall to be starved to death.

"After a week their bodies were gone. They had died," said Lee.

Lee became so weak in the camp she was sent home to die. Instead, a trader carried her on his back across the river to China, where she recovered her strength. A Christian activist gave her false papers, and Lee lived illegally for four years in eastern China, despite regular roundups by Chinese authorities to force North Koreans back across the border.

She finally joined the long smuggling route, an "underground railway" for North Koreans, that took her to Mongolia and eventually to South Korea in December. Only when she was safe did she throw away the rat poison she planned to take if she was forced back to North Korea again.

Lee arrived in Seoul to find physical comfort, but also referred to the loneliness that many other defectors describe when they finally reach safety. After two months in South Korea's reeducation camp, the government gave her an apartment and a monthly stipend. She is trying to learn secretarial skills and is contemplating life in a society where her accent and communist education set her apart.

"I thought when I came to South Korea everything would be happy. But I realize that's not true. I didn't know where to go or how to behave," she said.

She is sending money back through the smugglers' route so her mother and siblings can buy food in North Korea. "If my family is hurt, all my hope would be gone," she said.

"To be honest, sometimes I try to forget that happened to me," she said. "Now I realize how revolting it was. There, I was just numb. It's human to try to forget it."

http://www.washingtonpost.com/wp-dyn/articles/A7787-2003May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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